전라남도의 '여자만 국가 해양생태공원 조성사업'이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됐다.
국내 해양보호구역을 기반으로 한 생태공원이 국가 예타에 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년간의 기획과 설득 끝에 전남도가 '국가 해양생태공원 1호' 타이틀을 사실상 손에 쥐게 됐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는 최근 '여자만 국가 해양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지정했다.
이는 단순 검토 단계를 넘어, 국가 재정 투입을 전제로 한 정식 경제성 평가 절차에 돌입했다는 의미다.
전남도에 따르면 예타 조사는 2026년 말까지 진행되며, 통과 시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총 1,697억 원이 투입된다.
사업에는 ▲갯벌 복원 및 철새 서식지 확충 ▲해양보호구역 통합관리센터 구축 ▲염습지 및 멸종위기종 보호시설 ▲육·해상 탐방 인프라 확충 등이 포함된다.
국가 해양생태공원 제도는 2024년 해양수산부가 신설한 정책 틀로,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실제 사업이 예타에 오른 사례는 없었다.
전남도는 지난 4년간 수십 차례 사업계획을 보완하며,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순천·보성 갯벌의 보전 필요성과 '생태·관광·기후'의 복합 기능을 강조해 정부를 설득했다.
도 관계자는 "갯벌을 중심으로 한 국가 생태공원은 국내 첫 시도"라며 "단순한 보전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이용 모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예타 통과 가능성 70~80%…"1호 사업, 정부도 실패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의 예타 통과 가능성을 70~80% 수준으로 보고 있다.
비시장 편익이 큰 생태·환경 사업 특성상 경제성(B/C)이 낮을 수 있으나, 유네스코 등재지 관리와 탄소저장(블루카본) 등 정책성이 높아 점수를 보완할 여지가 크다.
정부가 최근 예타 평가에서 환경·균형발전 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점도 여자만 사업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법과 제도를 만들었는데 첫 사례를 실패하게 할 수는 없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가로림만·인천과의 서해권 경쟁…여자만이 한발 앞서
서해권의 다른 해양생태공원 후보지들도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충남은 가로림만 일대에 4,000억 원대 생태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고, 인천은 강화·옹진군 일대를 중심으로 수도권형 해양생태공원 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 예타 단계까지 진입한 곳은 여자만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해양수산부의 국가 해양생태공원 로드맵에서 여자만이 '기준 모델(Reference Site)"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예타를 통과하면 여자만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국가 해양생태 복합 거점으로 탈바꿈한다.
1,697억 원의 예산은 5년간 순천·보성 일대에 투입되며, 지역 건설·조경·복원 산업에 연평균 300억 원대의 재정 효과가 예상된다.
갯벌 복원과 철새 서식지 확충, 멸종위기종 보호뿐 아니라 지역 주민 참여형 생태관광 모델이 병행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도 기대된다.
또한 여자만은 갯벌 탄소 저장고(블루카본) 기능을 실증할 수 있는 기후대응 시범지로서 정책적 의미도 크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여자만은 대한민국 생태의 심장"이라며 "정부와 순천시, 보성군이 협력해 반드시 예타를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여자만은 수백 년간 지역 주민이 갯벌과 공존해 온 삶의 터전이자, 흑두루미와 붉은발말똥게 등 멸종위기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보고다.
전문가들은 "이곳이 국가사업으로 자리 잡으면 한국 해양생태 정책의 기준선이 새로 세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자만 사업이 예타를 통과하면, 한국 해양정책의 판도는 달라질 전망이다. '국가 해양생태공원' 제도가 실질화되면서, 가로림만·신안·인천 등 후속 지역의 추진에도 가속도가 붙게 된다.
즉, 여자만의 성공 여부가 곧 "대한민국 해양생태공원 시대의 성패"를 가르는 셈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협력, 지역 주민의 참여가 맞물릴 때 비로소 '보전과 이용의 균형'이라는 해양정책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