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가 '인공태양(핵융합) 연구시설' 유치를 위해 벌인 대규모 서명운동이 공무원 실적 중심의 동원행정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도민의 염원"을 내세웠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공무원 1인당 120명 이상의 서명 목표가 할당되고 실적이 매일 취합되는 등 관(官) 주도의 실적 경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핵융합 연구시설은 약 1조 2000억 원이 투입되는 국가 핵심 프로젝트로, 정부는 오는 11월 말 부지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대전·경북 포항·전북 군산 등 전국 지자체가 경쟁 중인 가운데, 전남도는 에너지밸리 혁신도시와 한전, 한국에너지공대(KENTECH) 등을 기반으로 나주 유치를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정 전문가들은 이번 서명운동을 두고 "행정의 자발성을 강요된 집단 행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순천대 행정학과 모 교수는 "공무원에게 인원 할당을 주고 실적을 취합하는 방식은 과거 동원행정의 전형적인 형태"라며 "행정이 도민의 참여를 이끌기보다는 실적 수치를 만드는 데 급급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지자체 공무원은 "이런 방식이 일선 공무원에게는 '사실상 명령'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며 "협조 요청이라고 하지만 조직문화상 거부하기 어렵다. 실적 보고가 일상화된 구조에서 자율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실적 압박은 서명운동의 신뢰성까지 흔들었다. 전남도 내부 메신저에는 "이름과 주소만 바꿔 같은 컴퓨터로 계속 서명할 수 있다"는 안내가 공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실상 중복 서명 조장으로, 행정이 앞장서 형식적 실적을 쌓도록 유도한 셈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도민의 염원을 보여주겠다며 시작한 운동이 결과적으로는 관제 여론으로 변질됐다"며 "숫자를 늘리는 데 집중한 나머지 공감과 진정성이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전남도의 해명처럼 "강요가 아닌 협조 요청"이었다 하더라도, 실제 행정조직 내에서는 그 말이 사실상 '지시'로 작용했다는 게 현장 공무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한 직원은 "서명 링크를 주변에 돌리고 실적을 보고하라는 메시지가 계속 내려오니 거절하기 어렵다"며 "유치의 필요성보다 '몇 명을 채웠는가'가 더 중요한 분위기였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도 산하기관 관계자는 "유치 그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방법이 문제였다. 도민의 참여를 설득해야 할 행정이 오히려 공무원에게 압박을 가한 꼴"이라고 말했다.

인공태양 이미지 (AI타임스DB)
인공태양 이미지 (AI타임스DB)

전문가들은 전남도가 인공태양 유치전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행정의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자치연구소 한 연구위원은 "서명 수는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도민이 얼마나 정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느냐"라며 "행정이 '숫자'를 민심으로 착각하면 결국 정책 추진의 정당성마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남은 에너지 인프라를 강점으로 내세우지만, 그 기반 위에 쌓여야 할 것은 도민의 신뢰"라며 "도민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행정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인공태양'은 미래 에너지의 상징이지만, 그 빛이 강할수록 행정의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성과 중심의 행정문화가 어떻게 자발적 참여를 왜곡시키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유치 경쟁은 뜨겁지만, 그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면 아무리 큰 예산과 인프라를 확보해도 지역사회 신뢰는 무너진다. 전남도가 진정 인공태양을 품고 싶다면, 먼저 행정의 태도부터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바꿔야 한다.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위원회 출범식 (사진=전남도)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위원회 출범식 (사진=전남도)

한편, 전라남도는 30일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에서 나주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산·학·연 기관과 함께 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위원회를 출범, 성공적 유치를 통한 미래 핵융합에너지 기술의 핵심 거점 도약을 다짐했다.

출범식에는 김영록 전남도지사, 윤병태 나주시장, 노승정 단국대 명예교수, 김영선 전남연구원장, 산학연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나주를 '대한민국 인공태양 연구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저작권자 © AI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