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도서관에서 AI를 활용한 디지털 보관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미국 매체 스미소니언 매거진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기도제목으로 인공지능을 꼽아 화제가 된 이후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첨단기술 도입에 소극적일 것 같은 종교계에서 예상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바티칸은 2010년부터 도서관 내 8만 건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현재 약 9000건 자료가 디지털 작업이 끝났으며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곳이면 어디서든 아카이브에 접속해 희귀한 역사적 고서 및 유물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바티칸은 최근 캠브리지 대학 수학자들이 설립한 ‘다크트레이스’라는 이름의 AI 시스템을 도입했다. 다크트레이스는 디지털화 작업을 마친 도서관 자료 보안을 맡는다. 바티칸 도서관은 가톨릭 종교 관련만이 아닌 고대 로마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방대하고 귀중한 유럽역사 자료가 집대성돼 있는 만큼 해킹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리오 미켈리 도서관 최고정보책임자는 “바티칸 도서관을 향한 사이버 위협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이버 위협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한 예로 전문해커가 디지털화 된 파일을 조작하거나 랜섬웨어 공격 등이 있다. 미켈리에 따르면 해킹에 성공할수록 그들의 몸값 또한 상당한 액수로 오른다고 한다.
미켈리는 “이러한 사이버 공격은 바티칸 도서관이 수백 년 동안 유지해온 명성에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은 물론 나머지 자료를 디지털화하는 우리의 계획에도 상당한 재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바티칸 도서관은 13세기 이전의 소장품에 대해서는 거의 공개하고 있지 않다. 니콜라스 5세 교황(1447-1455)이 즉위한 이후부터 도서관은 소장품을 대폭 확장공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바티칸 도서관은 유럽 내 어느 국가보다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현재까지 도서관의 8만권 원고 중 약 4분의 1이 디지털화되었다. 이 가운데에는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15세기 삽화는 물론 가장 초창기 성서사본 중 하나인 ‘코덱스 바티칸쿠스’와 같은 보물들이 포함돼 있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스케치 및 노트, 갈릴레오의 메모 등도 모두 바티칸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바티칸은 2016년 디지털 아카이브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반 시민 중 500유로를 기부한 200명에게 1600년 된 ‘베르길리우스’의 필사본을 증정하기도 했다. 고전 문학 삽화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필사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서기 400년경에 명필 한 명과 화가 세 명이 만들었다는 이 고대 문서에는 아직도 독창적인 삽화와 금박문자가 생생히 남아 있다.
바티칸에서 사이버 침해에 취약한 부분은 도서관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뉴욕타임스는 중국 해커들이 베이징에서 가톨릭 주교 선임을 둘러싼 민감한 회담을 앞두고 바티칸 네트워크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톨릭교회가 얼마만큼 감시당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결정적 증거”라고 비난했다.
미켈리 최고정보책임자는 많은 사이버 공격에도 계속해서 디지털 작업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임무는 바티칸 도서관을 21세기로 들여오는 것”이라며 “어떠한 사이버 공격에도 이 작업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