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동안 수천곡을 만들어온 작곡가 김도일이 '세기의 대결 AI vs 인간'에서 트로트 본연의 애틋하면서 흥겨운 멋을 찾는 선율의 ‘텔레파시’를 작곡해 가수의 선택을 받아 AI작곡가 이봄(EVOM)를 상대로 승리했다. AI가 패한 이유는 트로트 분야 마이너 장르에 속하는 삼바 트로트의 ‘데이터 부족’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 14일 방영된 SBS 신년특집 <AI vs. 인간> 최종회에서는 안창욱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학원 교수팀이 개발한 AI 작곡가 이봄과 김도일 작곡가의 트로트 신곡 대결에서 펼쳐졌다. 작곡대결은 인간과 AI가 각각 총 100일의 준비 기간을 갖고 하나의 ‘삼바 트로트’ 신곡을 작곡해 이를 실제 가수가 부른 후 마음에 드는 곡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녹화 당일 ‘텔레파시’, ‘사랑은 24시간’이라는 신곡이 소개 됐다. AI와 인간이 각각 작곡한 노래를 현재 활동 중인 트로트 가수가 부르고 패널들의 날카로운 예측이 시작됐다. 김이나 작사가와 김상욱 교수(물리학자)는 ‘텔레파시’는 사람이 창작한 곡, ‘사랑은 24시간’은 AI 작품이라고 예측했고 그들의 짐작이 맞았다. ‘사랑은 24시’가 AI가 작곡한 곡이었다.
'텔레파시'가 투박하지만 정감있는 멜로디를 선보였다. 이에 반해 '사랑은 24시간'은 기존 트로트에선 접하기 힘든 깔끔하고 세련된 선율을 담아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최종 선택은 가창자인 가수의 판단에 맡겨졌다. 두 곡을 부른 가수 홍진영은 '텔레파시'를 선택했고 대결은 인간의 승리로 AI가 패했다.
하지만 주관적인 판단으로 대결의 승패가 결정 난다는 점에서 인간과 AI작곡에서 누가 승리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전통 트로트 작곡가를 이기지 못했지만 최신 유행 음악 흐름을 적극 반영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할하다는 평이다.
◇ 10초에 한 곡 AI ‘이봄’ vs 3분에 한 곡 작곡가 김도일
방송에서 소개된 작곡 AI 이봄(EVOM)은 단순히 기존 곡을 대량 학습해서 모방하는 것이 아닌 음악 이론을 수식화해 학습했다. 계이름을 숫자로 바꿔 AI가 인식하게 하고 코드학습도 입력했다. 사람이 1년동안 학습할 음악 이론을 AI는 한 달만에 습득했다. 스스로 판단과 수정·발전하는 AI는 10초에 한곡의 트로트를 작곡할 수 있다. 아울러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의 경우 인간(개발자)가 판단, AI에 피드백을 반영해 완성도를 높였다.
이봄은 GIST AI 대학원의 안창욱 교수가 이끌고 있는 AI음악 스타트업 ‘크리에이티브마인드(CreativeMind)’에서 개발됐다. 클래식, K-POP, EDM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신인가수를 데뷔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봄은 국내 최초의 AI 작곡가로 독보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AI에 맞선 김도일은 44년 음악 경력으로 '보릿고개' 등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켰다.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자곡 자판기, 3분 작곡’이란 애칭도 생길 만큼 다양한 트로트 곡을 만든 인물이다. 곡을 만드는 과정은 기존의 작곡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업실에서 건반과 기타로 직접 연주하고 여러번 수정작업을 거쳐 창작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 AI 작곡가 패배 이유는?
AI작곡가와 인간과의 대결에서 AI 패한 이유로는 삼바 트로트곡의 데이터 부족을 꼽을 수 있다. AI는 100일 동안 매일 10시간씩 학습하고 하루 평균 500곡을 써냈다. 하지만 수십 만건의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는 AI에게 삼바 트로트 곡의 수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AI의 능력 발휘에 대량의 데이터 확보가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안창욱 교수는 “삼바 트로트 곡이 거의 없다”며 “몇 십만 곡의 데이터가 필요했는데 그 양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대량의 데이터만 확보 됐다면 이번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번 AI와 인간의 작곡대결은 미래에 누구나 AI기술을 활용해 신곡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창작’의 영역에서 인간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도 잘 보여줬다. 이제 이를 어떻게 잘 활용하는냐는 인간의 몫이다. 김상욱 교수는 “서태지의 난 알아요의 등장처럼 새로운 형태의 트렌드를 개척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새로운 형태의 트렌드를 개척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지만 AI를 보완적 수단으로 잘 활용한다면 더욱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총 5회에 걸쳐 진행된 <AI vs 인간>은 대결의 승패를 넘어 AI를 어떻게 우리 삶 속에 자리매김할 지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AI타임스 구아현 기자 ahyeon@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