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탑건(Top Gun)'이란 '최고의 총잡이'라는 뜻으로 미 해군 항공대에서 전투기의 접근전인 도그파이트에 능한 파일럿에게 붙는 명칭이다. 그러나 이러한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탑건들의 자리마저 인공지능(AI)이 빼앗을 날이 머지 않아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냉전시대에서 태어난 '탑건'의 역사

1986년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영화 '탑건'으로 엘리트 파일럿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영화 초반 항공모함에서 F-14전투기의 이함 준비 장면 오프닝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뽑힌다. 이 영화를 보면서 파일럿에 대한 꿈을 키운 사람들은 미국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영화 탑건에서 등장한 F-14 톰캣의 모습. (사진=셔터스톡).
영화 탑건에서 등장한 F-14 톰캣의 모습. (사진=셔터스톡).

탑건의 역사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생각지 못한 졸전 기록에서 시작됐다. 미사일이 개발되면서 접근전에 대한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여긴 미 공군과 해군은 이를 소홀히 여겼다. 그 결과 한국 전쟁 당시 12:1이었던 전투기 격추 교환비는 베트남 전쟁에서 3.7:1로 대폭 떨어졌다. 북베트남군의 전투기가 성능상에서 열악한 미그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파일럿들에게 접근전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쳐야겠다는 판단을 내린 미 해군은 1969년 캘리포니아주 미라마 해군기지에서 해군 전투기 무기 학교(Navy Fighter Weapon School·별칭 탑건)라는 훈련 기관을 신설한다. 이곳에서 상위 1% 파일럿을 양성하겠다는 의도였다.

연수를 받은 파일럿들은 원대 복귀 후 자기 부대의 파일럿들에게 교육기관에서 배운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는 조교 역할을 하게 됐다. 그 결과 미 해군의 격추 교환비는 올라갔다. 이렇듯 접근전에 능한 엘리트 파일럿인 '탑건'의 가치는 미 해군 핵심 전력으로 자리잡게 됐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하늘 위에서 이들의 압도적인 비행 실력은 전장의 상황을 뒤집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미래에 자네들 자린 없어"

36년 만에 개봉한 탑건의 후속작 '탑건: 매버릭'에서 주인공인 매버릭(톰 크루즈)은 무인 전투기 예찬론자인 케인 해군 제독으로 인해 자신이 참여하고 있던 극초음속 유인기 '다크스타 프로젝트' 예산이 대폭 삭감될 위기에 처하는 상당한 곤욕을 치르지만 요구하는 테스트 조건에 부합해 이를 면한다.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탑건: 매버릭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케인 제독은 매버릭에게 "자네가 시간을 좀 벌긴 했지만, 다가오는 미래에 자네들 자린 없어"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던진다. 이는 현재 직면한 전투기 파일럿들의 현실을 이야기해주는 상황이다. 현재 5세대 전투기인 F-22와 F-35를 뛰어넘는 6세대 전투기가 다가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6세대 전투기는 ▲AI ▲유·무인기 복합운용 ▲극초음속 엔진 ▲360도 공격이 가능한 레이저 ▲스텔스 성능 ▲고용량 네트워크 기능 ▲전자전을 위한 전파 방해 등의 개념이 적용된다.

가까운 미래, 'AI 탑건' 활약할 것

가까운 미래 전장에서는 이러한 6세대 전투기를 통해 AI 탑건이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0년에는 인간 파일럿과 AI 파일럿의 모의 접근전이 벌어졌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는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APL)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 공중전에서 F-16 조종사와 이스라엘 군사용 드론인 '헤론'의 AI 프로그램이  참여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는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APL)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 공중전에서 F-16 조종사와 이스라엘 군사용 드론인 '헤론'의 AI프로그램이  참여했다. 모의 전투에서 AI 파일럿은 5전 전승으로 인간 파일럿에게 참패를 안겨줬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는 존스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APL)의 후원으로 진행된 이 공중전에서 F-16 조종사와 이스라엘 군사용 드론인 '헤론'의 AI프로그램이  참여했다. 모의 전투에서 AI 파일럿은 5전 전승으로 인간 파일럿에게 참패를 안겨줬다. (사진=셔터스톡).

이 모의 전투에서 AI 파일럿은 5전 전승으로 인간 파일럿에게 참패를 안겨줬다. 인간 파일럿에게 단 한 차례의 유효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능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AI 파일럿의 장점은 다양하다. 육체가 없으므로 인간 파일럿과 같이 중력 등의 물리적 압박을 버틸 필요가 없다. 극한의 전투상황에서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다. 인간 파일럿은 격추당하면 사망의 위험이 상당하고 회복 불능이지만 AI 파일럿은 해당 플랫폼만 다시 설치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파일럿이 활약하는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AI에서 느껴지지 않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 투혼, 순발력이 빛나서일 것이다. 인간 파일럿을 육성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이들은 항상 하나뿐인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것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국가 영공을 수호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도 '탑건'이라는 존재는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AI타임스 나호정 기자 hojeong9983@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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