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록 나라지식정보 감독은 지난해 10월 생성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영화 ‘AI수로부인’으로 국내 첫 편집저작권을 인정받아 화제가 된 인물이다.

이후 심은록 감독은 정신없는 일정을 보냈다. 각종 강연에 출연한 것은 물론, 영화 업데이트 버전을 계속 선보였다. 최근에는 AI 영화 제작을 이론적으로 담아낸 ‘AI 영화론’을 출간했다. 

그는 “매주 생성 AI 관련 트렌드를 논의하는 미팅을 진행하는 등 기술과 콘텐츠가 같은 속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런 점은 책에도 반영됐다. 나라지식정보는 책 표지에 QR코드를 통해 전용 AI 챗봇으로 연결되도록 했다. 자체 개발한 언어모델 '나름(NA-LLM)'을 이용, 책 내용을 요약하고 정보를 빠르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기술을 콘텐츠에 적용하고, 다시 콘텐츠를 기술로 발전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물론 IT 기업이 AI 창작 영화를 선보이는 것은 모험이었다고 전했다. 심은록 감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AI 영화에 대한 인식은 99% 이상 부정적이었다”라고 말했다. AI수로부인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AI수로부인 제작에 나선 것에는 세가지 이유를 들었다. 먼저 나라지식정보는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고, 역사가 없으면 AI도 존재할 수 없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AI수로부인은 지난해 10월 시점에서 AI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처음으로 내놓은 1.0 버전은 생성 AI의 고질적인 문제인 사람 손 출력 문제 등 오류가 많았지만, 그대로 상영을 결정했다. 기술의 발전 단계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는 심 감독이 AI수로부인을 계속 고도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1.0에 이어 1.1, 1.2, 1.3까지 제작된 상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AI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샘플로도 유용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콘텐츠의 소프트웨어화”라고 표현했다.

“기존 영화 콘텐츠는 같은 내용을 통해 다른 시각, 다른 내용, 다른 콘셉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촬영 등 물리적이고 하드웨어적인 노력을 들여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생성 AI를 이용하면 변환과 수정, 확장 등이 소프트웨어만으로 가능해진다.

두번째 이유로는 ‘개인 영화 제작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나라지식정보는 혼자서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통합 AI 영화 제작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적인 AI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회사의 슬로건을 반영한 것이다. 이 영화는 신라시대 수로부인 설화에 초점을 맞춘 ‘K-컬처’ 영화다.

심은록 감독이 지난 2월 AIIA 정기 조찬포럼에서 AI수로부인 제작 과정을 발표하고 있다.
심은록 감독이 지난 2월 AIIA 정기 조찬포럼에서 AI수로부인 제작 과정을 발표하고 있다.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심 감독은 “올해 들어서는 AI 관련 영화 행사가 폭증하고 강의도 늘어날 만큼 대중 및 전문가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글로벌 무대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2024 창원국제민주영화제’에서 선보이는 ‘AI수로부인 1.3’에 그런 의도를 담았다. 이번 버전은 일종의 ‘음악 영화’ 장르라고 소개했다. 

“AI 영화의 트렌드는 호러나 판타지, 키치 등 비주얼 중심 장르에서 다큐 장르로 옮겨가고 있다”라며 “다음 단계에서는 ‘과연 AI가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일관성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오픈AI가 선보인 ‘소라’는 극한의 사실성을 보여준 것은 물론, 1분의 영상에서 인물의 생김새를 시간과 각도의 변화와 관계없이 유지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고 전했다. 

이는 기존 생성 AI 영화에서 호러가 많은 이유와도 직결된다고 분석했다. 일관적이지 못한 이미지를 커버할 수 있는 장르는 공포가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동물 캐릭터가 등장하는 생성 AI 애니메이션이 많은 이유와도 연결된다고 짚었다. 동물은 인간보다 생김새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또 인간은 같은 인간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만 모습이 어긋나거나 왜곡이 발생해도 몰입이 깨져버린다는 것이다. 

생성 AI 영화의 감성을 키포인트로 꼽은 것도 이 때문이다.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술적인 부분이 해결돼야 한다.

기술은 지난해에 비해 많이 발전했다. “지난해에는 등장인물이 고개를 좌우 5도 돌리는 것도 힘들었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런웨이의 '젠3 알파 터보' 등을 이용하면 360도 패닝까지 연출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감성을 자극할 정도의 완성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이 때문에 비주얼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음악으로 보고, 1.3 버전에는 AI로 생성한 음악을 추가했다. 아이바나 수노, 유디오 등 AI 도구를 특성에 맞춰 활용했다. 

심 감독은 “AI 영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 영화라는 종합예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라며 “넓게 보자면 인풋과 아웃풋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멀티모달모델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또 얼마 전 영화배우 벤 에플렉이 방송에 출연해 “AI는 영화 산업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소신을 밝힌 내용을 소개했다.

(사진=나라지식정보)
(사진=나라지식정보)

심은록 감독은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상상을 덧붙였다. “나중에는 인간이 표현하거나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AI가 영상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별과 우주를 보이는 부분까지만 믿는 것처럼, 지금 볼 수 있는 지구의 일부를 넘어 AI가 콘텐츠 표현 범위와 인간 인식을 대폭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편, ‘AI수로부인’은 1.4에서 마무리할 예정이다. 만약 모든 등장인물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수준까지 기술이 올라간다면, 1.4가 아닌 1.5로 네이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이후에는 차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나라지식정보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지난해 제작한 1.1 버전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버전은 1.0 공개 이후 단 일주일의 수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장세민 기자 semim99@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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