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가 사용된 첫 공식 문서 (사진=다트머스대)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가 사용된 첫 공식 문서 (사진=다트머스대)

“우리는 1956년 여름, 뉴햄프셔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대학교에서 두달 동안, 10인의 인공지능 연구 수행을 제안합니다”라고 시작되는 제안서는 1955년 8월31일 작성됐다. 다트머스대학의 수학과 조교수였던 존 매카시가 작성한 제안서는 록펠러 재단에 연구 모임의 후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공동 주최자 4인의 이름으로 1955년 9월2일에 공식적으로 제출됐다. 무엇보다도 이 제안서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첫 공식 문서라는 점에서 AI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게 됐다.

1949년에 클로드 섀넌과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을 쓴 워렌 위버는 1955년 당시에 록펠러 재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자연과학부 책임자로 부임한 뒤 록펠러 재단은 기계적 계산장치에 대한 연구 지원과 투자를 강화했는데, 그 일환으로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연구도 지원하고 있었다. 매카시는 사이버네틱스와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연구 모임에 대한 지원이 필요했기에 섀넌의 도움을 받아 록펠러 재단에 재정 후원을 요청했다. 새넌과의 친분에도 불구하고, 수학자로서 매카시의 제안 연구 내용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위버는 생물학 및 의학 연구 책임자인 로버트 모리슨에게 후원 결정을 일임했다. 매카시와 섀넌이 모리슨과 사전 미팅을 한 이후인 9월2일 공식 제안서가 보내졌다. 모리슨은 그 제안이 장기적으로 도전해 볼만한 연구분야지만,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이므로 큰 금액을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며 매카시가 요청한 금액의 반 정도를 지원하는 선에서 후원을 승인했다.

이런 배경으로 1956년 6월18일부터 약 2개월간 이뤄진 모임은 본격적인 AI 연구의 출발점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다트머스 회의’다. 이는 1956년 여름 다트머스대에서 개최된 최초의 AI 연구 모임을 말하는 것인데, 형식이 컨퍼런스였는지 워크숍이었는지에 대한 사소한 논란이 있지만 모임의 정식 명칭은 'AI에 관한 다트머스 여름 연구 프로젝트(Dartmouth Summer Research Project on Artificial Intelligence)'였다.

모임의 형식이야 어찌 되었든, 이렇게 본격적인 AI 연구의 시대가 미국 뉴햄프셔주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대에서 시작됐다.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존 매카시는 그의 교수 생활 대부분을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보냈고 다트머스대에서는 단지 1여년간 조교수로 재직했지만, 그 기간 동안 그가 첫번째 AI 회의를 개최한 덕분에 다트머스대는 AI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장소가 됐다.

다트머스 회의가 있기 전인 1950년대 초반은 앨런 튜링의 ‘계산 기계와 지능’ 논문이 발표됐고, 폰 노이만이 인간 두뇌와 똑같은 컴퓨터에 대한 연구를 하던 시기였다.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은 최초의 AI 프로그램 ‘논리연산 이론가’를 개발했고, 아서 사무엘이 컴퓨터 체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연했으며, 많은 연구자가 체스나 체커 게임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워렌 맥컬럭과 월터 피츠가 신경망의 수학적 모델을 발표한 이래, 마빈 민스키와 몇몇 연구자들은 신경망 학습 장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실물이 있는 장치로 영국의 그레이 월터는 '거북이(tortoises)'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율 로봇을 공개했고, 클로드 섀넌은 스스로 미로를 찾아 나가는 마우스 테세우스를 공개했다. 올리버 셀프리지의 패턴 인식기 시연,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 그리고 클로드 섀넌과 존 매카시의 오토마타 연구도 당시의 생각하는 기계 그리고 기계 지능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불을 지펴주던 시절이었다.

1955년 초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다트머스대에 조교수로 임용된 매카시는 연구하고 구상해 오던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개념과 아이디어를 정립하기 위해 전문가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구상했다. 특히 그해 여름, IBM 701 컴퓨터의 수석 설계자인 나다니엘 로체스터의 초청으로 IBM에 가 있는 동안 로체스터와 함께 민스키와 섀넌을 만나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워크숍을 제안하고 참여하겠다는 답을 얻어냈다. 그렇게 매카시를 비롯해 민스키, 로체스터, 섀넌 등 4인 공동 주최자는 워크숍을 준비하고, 이를 진행하기 위한 자금을 후원받기 위해 섀넌의 정보이론의 공동 연구자였던 워렌 위버를 통해 록펠러 재단에 연구 모임의 후원 요청을 제안하게 됐다.

1955년 9월에 제출된 공식 제안서에서 매카시는 회의 주제 이름을 'Artificial Intelligence'로 명명했고, 그 이름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로 사회 전반에 걸친 기술 대변혁의 주체가 돼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원래 매카시의 연구 분야 중 하나였던 오토마타 이론에는 기계가 지능적으로 작동하도록 다루는 논문이 거의 없어, 오토마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연구의 주제를 잡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는 사이버네틱스가 좀 더 적합한 단어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아날로그 피드백을 바탕으로 사람의 뇌처럼 작동하는 기계를 추구한 사이버네틱스 그룹과 달리, 매카시는 새로운 연구 분야가 사람이 생각한 것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들의 연구가 노버트 위너의 이론과 연관되는 것을 피하고, 사이버네틱스가 추구하는 기계와 구분 짓기 위해 새로운 단어인 'AI'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제안서는 이렇게 이어진다. “이 연구는 학습의 모든 측면이나 지능의 다른 특징이 원칙적으로 매우 정확하게 설명돼, 기계가 이를 시뮬레이션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추측에 기초해 진행됩니다. 기계가 언어를 사용하고, 추상화와 개념을 형성하고, 인간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기계 스스로 학습하는 방법을 시도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안서는 여름 회의 기간 엄선된 과학자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하나 이상의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룰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또 그런 문제의 일부 사례로 자동화된 컴퓨터,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신경망, 계산 효율 측정을 위한 복잡성 측정 이론, 자기 개선, 추상화 형성 기계, 무작위성과 창의성을 간략한 설명과 함께 나열했다. 

또 제안서에서는 공동 주최자 4인의 학문적 배경이 정리되고, 록펠러 재단에 지원을 요청하는 비용의 구체적인 사용 항목과 소요 예산이 계산된 예상 경비 내역서도 포함됐다. 그리고 회의를 통한 주최자 4인의 상세한 연구 계획서와 함께 회의에 관심을 두거나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첨부돼 있었다.

1956년 다트머스 AI 워크숍에 참석한 클로드 섀넌(앞줄 오른쪽)과 레이 솔로모노프(앞줄 왼쪽) 등. (사진=The Minsky Family)
1956년 다트머스 AI 워크숍에 참석한 클로드 섀넌(앞줄 오른쪽)과 레이 솔로모노프(앞줄 왼쪽) 등. (사진=The Minsky Family)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록펠러 재단에 다시 제출된 제안서에서는 11명의 과학자를 정식 초청해서 2개월간 심도 있는 회의를 진행한다고 계획됐는데, 명단에 있던 11명의 과학자 중에서 최종 9명이 참가했다. 그 외에도 공식, 비공식으로 또 다른 11명의 과학자가 추가 참석했지만, 존 매카시와 마빈 민스키, 레이 솔로모노프 3명만이 모든 기간을 다 참석했을 뿐 나머지 과학자들은 회의 기간 중 일부 기간만 참석했다. 그런데 레이 솔로모노프가 정리한 명단을 보면, 학계와 기업에서 온 20인의 참석자들은 모두 당대의 쟁쟁한 수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엔지니어, 컴퓨터 과학자들로 훗날 AI 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20인에 대해서는 다음 2회에 걸쳐 알아본다.

문병성 싸이텍 이사 moonu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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