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트머스 회의 50주년 기념 2006년 행사에 참석한 트렌차드 모어(왼쪽부터),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올리버 (사진=다트머스대학교)
다트머스 회의 50주년 기념 2006년 행사에 참석한 트렌차드 모어(왼쪽부터), 존 매카시, 마빈 민스키, 올리버 (사진=다트머스대학교)

다트머스 회의 제안서에 공식적으로 참석한 9명은 공동 제안자 4명과 앨런 뉴웰, 허버트 사이먼, 올리버 셀프리지, 줄리안 비글로우, 레이 솔로모노프 등 5명이었다. 회의 당시 앨런 뉴웰과 허버트 사이먼은 이미 AI 프로그래밍 언어 IPL을 개발하고, 최초의 AI 프로그램인 논리연산 이론가를 완성한 상태였다.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인 노버트 위너의 제자이자 앨런 뉴웰이 평생 AI 연구를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던 올리버 셀프리지(Oliver Selfridge)도 참석했다. 마빈 민스키가 자신의 멘토로 인정했던 셀프리지는 초기 AI 연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선구적 과학자다. MIT에서 수학을 전공했던 그는 이미 1954년에 문자와 패턴을 인식하고 학습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상을 발표하고, 초기 버전의 패턴 인식기를 공개한 상태였다. 

그의 시각패턴 인식기는 알파벳 문자나 삼각형, 사각형 등의 단순한 도형을 인식하는데, 문자나 도형의 특성을 계산하고 표준 기호와 비교하여 인식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주 잘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기호나 문자의 특성을 새로 생성하기도 하고 기존 특성을 제거하기도 하는 일종의 학습 기능이 있었다. 다트머스 회의 이후에도 신경망, 패턴 인식 및 기계 학습 분야의 초기 연구에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계속된 연구로 그는 '기계 지각(Machine Perception)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는데, 20여년간 미국 국가안보국에 데이터 처리 자문을 했다.  

줄리안 비글로우(Julian Bigelow)는 MIT에서 전기공학과 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노버트 위너의 사격통제 시스템과 대공포 시스템 개발을 도운 인연으로 사이버네틱스에 관한 논문을 공동 저술했다. 전쟁 후에는 폰 노이만과 IAS 머신을 개발했던 선구적인 컴퓨터 엔지니어였으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지냈다. 당시 위대한 엔지니어 중의 한명이었던 비글로우는 노버트 위너나 폰 노이만과 같은 이론가들의 아이디어를 현실 세상의 장치로 구현해 주는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맡았다.

레이 솔로모노프(Ray Solomonoff)는 시카고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초기 네트워크의 통계적 분석 논문들을 발표하며 매카시와 교류하게 됐다. 당시 AI를 구현하려 노력하던 많은 학자는 주로 조건문을 활용한 기호주의적 접근이었지만, 솔로모노프는 확률론을 바탕으로 기계 학습을 구현하는 주장을 피력하며 연구를 회의에서 발표했다. 이는 딥러닝이 주류가 되기 바로 전 시기에 큰 주목을 받았던 통계 기반의 머신러닝 기술의 초기 접근으로 보인다. 다트머스 회의 후에도 그는 최초의 확률론적 기계학습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알고리즘적 확률론을 발표하는 등 예측, 확률론과 컴퓨팅 이론을 결합하며 AI의 수학적 이론의 기반을 다진 컴퓨터 과학자로 일생을 보냈다. 다트머스 회의 내용에 관한 기록은 솔로모노프의 노트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다트머스 홀에 설치된 기념패 (사진=다트머스대학교)
다트머스 홀에 설치된 기념패 (사진=다트머스대학교)

이들 외에 간헐적으로 다트머스 회의에 참석했던 11명으로는 워렌 맥컬럭, 존 내쉬, 로스 애쉬비, 에이브러햄 로빈슨, 아서 사무엘, 데이비드 세이어, 알렉스 번스타인, 트렌차드 모어, 케니스 쇼울더즈, 톰 에터 등이 있다.

워렌 맥컬럭(Warren S. McCulloch)은 신경 생리학자로 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신경 생리학을 연구하고, 정신 의학과 교수 생활을 했다. AI, 특히 딥러닝은 그의 연구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위대한 연구 업적은 1943년에 논리 학자 월터 피츠(Walter Pitts)와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신경세포의 무한한 조합으로 튜링 머신이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시한 뉴런의 수학적 모델이었다. 힉스 심포지엄에서 그의 강연은 존 매카시가 평생 AI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맥컬럭의 연구가 AI 연구에 가장 크게 그리고 직접적으로 미친 영향은, 그의 연구를 기반으로 1957년에 프랭크 로젠블래트가 단층 신경망 시스템 ‘퍼셉트론’을 구현한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발전해 온 신경망은 현재 가장 크게 각광받는 딥러닝의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맥컬럭은 MIT에서 그의 신경망 모델링 연구를 계속하며 사이버네틱스 연구에도 크게 기여했는데, 그 무렵 다트머스 회의에 참석했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영화 '뷰티플 마인드' (사진=유니버설 픽처스)

주인공의 성격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려졌던 2001년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실제 모델인 존 내쉬(John F. Nash Jr.)는 프린스턴의 수학 박사 과정에서 매카시와 동료였다. RAND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1951년부터 MIT에서 강의했는데, 이 당시에 다트머스 회의에 참석했다. 특히 그의 이름을 딴 ‘내쉬 균형’ 이론이 유명한데, 게임이론 연구로 경제학과 사회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94년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로스 애쉬비(William Ross Ashby)는 영국의 정신 의학자이면서 사이버네틱스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임상 정신과 의사 및 연구 병리학자로 일했는데, 영국의 사이버네틱스 모임인 레이쇼 클럽의 초기 멤버로 참가하며 앨런 튜링 등 여러 학자와 교류했다. 1948년에는 ‘뇌의 설계’라는 책을 출간하며 변화하는 환경에서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학습과 같은 행동을 나타내는 장치 ‘호미오스태트(homeostat)’를 소개하고 만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미국의 사이버네틱스 관련 회의들에 자주 초청됐고, 1956년에는 다트머스 회의에 참여하게 됐다. ‘사이버네틱스 입문’를 출간했으며, 1960년에는 일리노이대학교 교수로 임용되며 미국으로 이주했다.

에이브러햄 로빈슨(Abraham Robinson)은 런던대학교에서 수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다트머스 회의 당시 토론토대학교 응용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문제 해결에 수학적 논리 접근 방식으로 유명했으며, 비표준 해석학의 창시자로도 알려진 응용 수학자이다. 

IBM에서는 나다니엘 로체스터 외에 체커 프로그램을 만든 아서 사무엘과 데이비드 세이어, 알렉스 번스타인, 트렌차드 모어 등 4명이 더 참석했다. 데이비드 세이어(David Sayre)는 미국 과학자로 결정학 및 회절 분야의 선구자다. 1951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결정의 분자구조 연구를 진행하다가, 그 연구에 상당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IBM에서는 그가 작성한 IBM 701 컴퓨터용 구조 결정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보여 1956년에 그를 스카우트했는데, 이때 다트머스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이후 세이어는 IBM에서 포트란 언어 개발에도 참여하고, 결정학 및 나노 기술을 이용한 연구를 진행했다.

알렉스 번스타인(Alex Bernstein)은 IBM에서 회사의 승인하에 파트 타임으로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었다. 앨런 튜링 이래 클로드 섀넌, 뉴웰과 허버트는 모두 생각하는 기계로서 체스 프로그램 연구를 했었다. 그래서 매카시와 공동 주최자들은 번스타인의 체스 프로그램에 대해 듣기 위해 그를 초청했다. 트렌차드 모어(Trenchard More)는 IBM의 왓슨 연구소에서 왔는데, 후에 MIT와 예일 대학에서 교수를 지내기도 한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이다. 

또 MIT에서 초소형 데이터 처리 소자와 시스템을 연구하던 케니스 쇼울더즈(Kenneth Shoulders)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의 동료 한 명이 참석했다. 회의에 참석 한 톰 에터(Thomas Etter)는 한참 후인 1980년대에 ‘랙터(Racter)’의 공동 개발자가 됐는데, 이는 임의의 글을 생성하는 AI 프로그램이었다. 랙터는 대화형 버전으로도 공개되었는데, 이는 현재의 챗봇과 비슷한 형태였다.

다트머스 회의 초대자의 명단은 제안서와 문서로 남아 명확하지만, 참가자 명단은 회의가 끝난 후 매카시가 명단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명확하지 않다. 2회에 걸쳐 소개한 20인의 다트머스 회의 참가자들은 레이 솔로모노프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참가자들의 기억에 따라 두세명이 더 거론되기도 한다.  

문병성 싸이텍 이사 moonu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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