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주요 기술 기업들이 유럽연합(EU)의 AI 법 시행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규제가 성급하게 시행될 경우 유럽의 인공지능(AI) 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며, 규정 적용을 2년간 유예할 것을 공식 요청했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은 3일(현지시간) 유럽의 주요 기술 및 산업 기업들이 EU의 AI 법 시행을 2년간 연기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ASML, 에어버스, 미스트랄, 메르세데스-벤츠, 지멘스에너지 등 기업 45곳은 최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보낸 공동 서한에서 "현행 규제가 유럽의 AI 혁신 역량을 저해할 수 있다"라며 "보다 혁신 친화적인 규제 접근"을 요구했다.
이번 요청은 오는 8월2일부터 시행 예정인 EU의 AI 법 중 일반 목적 AI(GPAI) 및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조항을 대상으로 한다. 기업들은 AI 규제의 핵심인 '실행 지침(Code of Practice)'이 제때 마련되지 않아 현실적인 준비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행 지침은 연 매출의 최대 7%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세부 규정이다.
AI 개발사와 사용자에게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될 실행 지침은 5월2일 발표 예정이었지만,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실질적인 법 시행 시기를 재조정, 규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개발과 투자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해달라는 입장이다.
메타와 구글, 미스트랄 등 주요 AI 기업들은 실행 지침이 법률을 넘어선 과도한 요구를 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메타는 “현재 형태의 지침은 실행 불가능하다”라며 서명 거부 의사를 밝혔고, 구글도 일부 조항이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도 실행 지침 초안을 문제 삼으며 수정이나 폐기를 요청한 바 있다.
기술 투자사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주도한 이번 공동 요청은 단순한 산업계의 반발을 넘어, 유럽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참여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규제를 시행하면 AI 혁신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시행 연기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유럽위원회도 지침 적용 시점을 2025년 말로 늦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대변인은 앞으로 며칠 안에 규정을 발표할 계획이며, 기업들이 다음 달에 가입하고 연말에 지침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는 "AI 법의 GPAI 규정과 관련해 유럽 AI 위원회는 실무 강령을 시행할 시기를 논의 중이며, 2025년 말이 고려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EU AI 법은 지난해 초 확정된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안으로, AI 모델의 투명성과 안전성, 편향성 테스트, 에너지 효율성 보고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오픈AI나 구글, 미스트랄 등의 대형언어모델(LLM)은 시스템 아키텍처 공개, 저작권 준수, 리스크 평가 등 엄격한 기준을 따라야 한다.
현재 시행 시점은 2024년 8월2일이지만, 정식 적용까지는 유예 기간을 줬다. 신규 모델은 2026년 8월부터, 기존 모델은 2027년 8월까지 완전한 규정 준수가 요구된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이 지연되며 전체 일정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AI 시민단체 코퍼레이트 유럽 옵저버토리(CEO)는 "지연, 일시중지, 규제 완화는 빅테크의 전략적 로비 전술"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