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시도 AI데이터센터 예상조감도
솔라시도 AI데이터센터 예상조감도

올해 2월, 전남도가 내놓은 선언은 요란했다. 해남군 솔라시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AI) 슈퍼클러스터를 만들고, 총 15조 원, 나아가 50조 원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었다.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와 천문학적 투자액은 사람들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전남이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덩달아 부풀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본 기자의 마음 한편에는 불안이 자리했다. 과연 50조라는 자금 규모가 실체 있는 계획인지, 아니면 치적을 부풀리기 위한 선언은 아닌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투자유치의 근거와 자금 조달 방안은 보이지 않았고, 구체적 실행 계획 또한 빈약했다. 당시에도 이러한 우려를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우려는 현실의 그림자로 드러나고 있다. 당초 8월로 예정됐던 본계약은 투자사 요청으로 6개월 연기됐다. 

광역지자체가 추진하는 수십조 원대 초대형 프로젝트에서 본계약이 이렇게 유예되는 일은 흔치 않다. 

전남도는 "투자가 무산된 것이 아니다"라며 "협의를 위한 연장"이라고 해명했지만, 도민과 국민의 눈에는 '세계 최대'라는 구호 뒤에 가려져 있던 준비 부족이 그대로 비치고 있다.

정치인은 큰 비전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에는 반드시 실현 가능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준비와 검토 없이 내뱉은 장밋빛 구호는 잠시 기대를 부를 수는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실망과 불신으로 되돌아온다. 

특히 50조 원이라는 규모는 광역지자체가 다루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숫자다.

만약 이 사업이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도민이 겪을 좌절감과 행정에 대한 불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물론 이번 사업이 아직 실패로 귀결된 것은 아니다. 투자사는 일부 자금을 이미 확보했고, 글로벌 기업과의 접촉도 이어가고 있다.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국가 차원의 지원 가능성도 열려 있다. 따라서 이 사업은 여전히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갈림길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전남도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더 이상 숫자와 구호를 앞세울 때가 아니라, 도민과 국민에게 정직한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자금 조달 경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토지 협상 방안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실현 가능한 단계적 추진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작은 규모의 성과라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공허한 거대 담론보다 훨씬 값지다.

정책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정치적 성과를 위한 치적 부풀리기와 구호 남발은 결국 도민의 신뢰를 허무는 지름길이다. 

전남도는 이제라도 '세계 최대'라는 말보다 '실현 가능한 길'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 정치가 남긴 또 하나의 공허한 약속으로 역사에 기록될 뿐이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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