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방사청)이 최근 '수의계약 사유 평가위원회'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수의계약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비판이 거세다. 무려 2년 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사업을 비롯한 대형 사업의 지연 책임을 회피하려는 '땜질식 처방'이라는 것이다.

더욱 논란이 되는 대목은 방사청이 현재 표류 중인 KDDX 사업에는 이 제도를 소급 적용하지 않고, 신규 사업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당면한 숙제는 뒤로 미루고, 미래의 잠재적 위험만 관리하려는 모습은 '책임 회피성 제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방사청의 딜레마와 수의계약 평가위의 실체

방사청은 수의계약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하지만, 법령 개정 소요 등을 이유로 현재 논란의 중심인 KDDX 사업에는 소급 적용하지 않고 신규 사업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은 비판에 힘을 실어준다. 즉, 당면한 숙제인 KDDX 사업의 복잡한 이해관계(보안 감점, 수의계약 vs 경쟁입찰 갈등, 상생협력 등)로 인한 결정을 회피하고, 미래의 잠재적 위험만을 관리하려는 '땜질식 처방'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특히 KDDX 사업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라는 국내 대형 조선업체 간의 갈등과 보안 감점 등의 이슈가 얽혀 사업자 선정이 2년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7.8조 원 규모의 핵심 전력 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해군 전력화 차질은 물론, 세계 시장에서 K-방산의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대안 제시는 '책임지는 결정 시스템' 구축

'수의계약 사유 평가위' 신설은 방위사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하나의 방안일 수는 있으나, 근본적인 문제인 '결정의 지연'과 '책임 회피'를 해결할 수는 없다. 방사청이 책임지는 자세로 난맥을 해소하고 전력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1. '패스트 트랙' 도입을 통한 신속 결정 시스템 구축

KDDX와 같은 7조 원 이상의 핵심 전략사업에 대해서는 사업방식 결정에 관한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의 권한 및 책임 강화를 통해서 단순한 논의 기구를 넘어, 지연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특정 기간 내에 결론을 도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전문성이 강화된 '중재 위원회' 활용을 통해서 업체 간 첨예한 기술적/법적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국방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적인 '사업 중재 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운영하여 갈등을 신속하게 조정하고 결론을 강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2. '결정의 투명성' 확보와 '객관적 기준' 선행 제시

평가위원회를 신설하기 이전에, 사업 결정의 근거가 되는 평가 기준과 절차를 사전에 대폭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보안 감점' 등 규정의 명확화를 통해서 보안 감점 적용 기간이나 범위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규정을 '선결정 후처리'가 아닌 '사전 명확화'하여 논쟁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KDDX 사례처럼 법적 다툼이 발생하기 전에, 복잡한 사안에 대한 법적 해석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경쟁입찰 원칙'과 '전력화 시급성'의 조화를 통해서 수의계약이냐 경쟁입찰이냐의 논쟁을 넘어, '전력화 시급성'을 최우선 평가 기준에 포함하고, 특정 단계에서 수의계약으로 전환해야 하는 객관적 사유(예: 기술 연속성, 개발 위험도 등)를 공표해야 한다.

3. 장기적 관점의 '방산 생태계 상생 로드맵' 제시

특정 사업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대형 사업에서 중소 협력업체 및 경쟁 업체 간의 '상생 협력' 방안을 법적으로 제도화하는 장기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부작용을 줄이고, 방산 경쟁력을 고르게 키우는 기반이 된다. 한 업체가 선정되면 모든 것을 가져가고, 탈락한 업체는 투자한 비용과 기술 역량이 사장된다. 이는 방산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문제다. 또한 대기업·중소기업 간 기술 협력 및 이익 배분 구조를 명문화해야 한다. 대형 사업일수록 중소 협력업체의 역할이 크지만, 이익 배분과 기술 보호에서 불공정한 경우가 많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투명하게 관리해야 방산 생태계 전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방사청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평가위원회가 아니다. 2년 넘게 표류한 KDDX 사업에 대한 명확한 결정이다. 절차적 정당성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그 모든 절차는 무의미하다. 국가 안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전력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방산 생태계의 불확실성은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꺾는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K-방산의 명성도 신속한 의사결정과 이행 능력에서 나온다.

방사청은 단순히 절차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속하고 책임 있게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 패스트 트랙 제도를 도입하고, 투명한 기준을 사전에 제시하며, 방산 생태계의 상생 로드맵을 그려내야 한다. 그것이 2년 넘는 KDDX 지연 사태를 겪으며 훼손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명실상부한 K-방산의 중심축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책임 회피가 아닌, 책임지는 결정을 내릴 때다.

양현상 전문 위원(방산우주산업연구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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