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방산은 전 세계 방산 시장에서 놀라운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중동·동남아를 중심으로 ‘K-방산 르네상스’라는 표현이 회자될 만큼, 한국 무기체계는 수출과 신뢰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오랜 기간 K-방산의 강점으로 평가받아 온 ‘가성비’가 있었다. ‘품질은 우수하지만 가격은 합리적이다’라는 평가가 성공의 기폭제가 되었지만, 이제 이 가성비라는 단어가 K-방산의 미래를 가로막을 위험 요소로 변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시장 인식은 가성비를 가격이 저렴한 제품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인식이 일반화되면 K-방산도 가성비는 ‘저렴한 무기’의 대명사로 오해될 수 있다. 문제는 이 이미지가 결국 ‘낮은 기술 수준’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 가성비 프레임의 구조적 위험

방산 산업은 소비재 시장과 다르다. 한번 거래가 수십년간의 정치적 신뢰, 기술 신뢰, 운용 신뢰로 이어진다. 이런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만이 강조되면, 그 뒤에 있는 첨단 기술·품질 검증· R&D 역량이 가려지기 마련이다. 

결국 가성비 중심 전략은 K-방산의 연구개발 투자 여력을 약화시키고, 공급망 생태계의 부가가치를 제한하며, ‘B급 이미지’라는 낙인을 고착화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지금 K-방산이 직면한 도전은 ‘싸게 팔아서 많이 파는’ 구조가 아니라, ‘제값 받고 신뢰받는’ 구조로 시장 인식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프라이스 디코딩’, 가격을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

이를 위해 K-방산이 내세워야 할 핵심 전략은 프라이스 디코딩(Price Decoding)이다.

이는 가격을 단순하게 인상하거나 낮추는 문제가 아니라, 가격 속에 숨어 있는 가치를 해석해 시장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말하자면 가격을 ‘통역’하는 능력이다.

첫째, 신속 납기의 전략적 가치화가 필요하다.

K-방산은 세계 어느 경쟁국보다 빠른 납기 대응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속도는 단순한 일정 관리로만 인식돼 왔다. 실제로는 수요국의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고, 작전 효율성을 보장하는 안보 자산이다. 이제는 '프리미엄 납기 서비스'로 정의해야 한다. 시간의 가치를 화폐적 가치로 환산해 가격 구조 안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토털 패키지(Total Package)의 경제적 재해석이다.

K-방산의 진짜 경쟁력은 무기 그 자체가 아니다. 교육·훈련·정비·기술 이전을 포함한 통합 공급 체계야말로 지속 운용성을 보장하는 핵심 가치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 부가물이 아니라, 수명주기(Life Cycle Cost) 절감이라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고객의 관점에서 K-방산의 가격은 “무기를 산다”가 아니라 “전력 유지와 운용 효율을 구매한다”라는 의미로 전환돼야 한다.

셋째, R&D 투자를 '안보 프리미엄(Security Premium)'으로 전환해야 한다.

첨단 무기체계의 가격에는 소재 기술, AI 제어 시스템, 데이터 보안, 품질 인증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포함돼 있다. 이 금액은 단순한 원가가 아니라 미래 전장 환경에 대응하는 ‘기술 보험료’다. 기업은 이러한 내재 가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명주기 성능비(LCC) 비교나 기술 인증 데이터를 통해 ‘가격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가격이 기술과 신뢰의 언어로 해석될 때, 시장은 ‘프리미엄’을 납득한다.

지속 가능한 K-방산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K-방산이 진정한 글로벌 톱티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가성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격 중심의 논리를 버리고, 기술력·신속성·운용 패키지· R&D 투자 가치를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가격 중심(Value for Money)에서 가치 중심(Meaning in Price)으로의 철학적 전환이다.

정부는 수출 정책에서 가격 경쟁력보다 기술 신뢰도 중심의 평가체계를 도입해야 하며, 기업은 제품 단가 뒤에 숨은 가치사슬(Value Chain)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시장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K-방산이 단기 수주 경쟁을 넘어, 기술·신뢰·브랜드가 결합된 프리미엄 구조로 성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K-방산의 ‘프리미엄 르네상스’를 향하여

이제 세계는 ‘가장 싸서 사는 무기’가 아니라 ‘가장 뛰어나서 선택하는 무기’를 원한다. K-방산이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숫자로서의 가격이 아니라 가치로서의 가격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가격에 숨어 있는 기술력과 신뢰의 스토리를 읽어내는 프라이스 디코딩 전략이야말로 K-방산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브랜드 격상을 이끌 핵심 해법이다.

이제 K-방산은 가성비의 시대를 넘어 가치의 시대를 선언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방위산업이 세계 시장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새로운 르네상스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양현상 전문 위원(방산우주산업연구소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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