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의회가 조례동 시유지를 현대여성아동병원에 수의계약으로 매각한 것을 두고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병원이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순천현대여성아동병원 조감도 (조감도=현대여성아동병원)
순천현대여성아동병원 조감도 (조감도=현대여성아동병원)

표면적으로는 '시유지를 싸게 넘겼느냐'는 행정 논란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사안의 핵심은 따로 있다.

전남 동부권에 지금 같은 모자(母子)·신생아 의료를 유지할 병원이 실제로 몇 곳이냐 하는 문제다. 이걸 빼고 "특혜다, 아니다"만 남기면 지역이 감당해야 할 공백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논란은 순천시가 18년 전 사들인 조례동 산지 일부(7,949㎡)를 현대여성아동병원 새 병원 부지로 매각하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시의회 일부 의원은 ▲행정재산을 매각용으로 바꾸는 속도가 빨랐고 ▲감정평가액이 인근 공시지가보다 낮아 보이며 ▲시민에게 과정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특정 병원에 혜택이 간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이에 대해 병원은 "공유재산심의회(8월 19일)와 시의회 본회의(9월 9일)를 모두 거친 사안으로 절차적 하자는 없다"며 "토지보상법 취지를 그대로 적용하면 시가 산정한 감정가가 오히려 높은 편이라고 본다"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없었다"며 "공익사업을 두고 정치적으로 흠집내기를 반복한다면 법적 대응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은 이름 때문에 '일반 산부인과'로 오해받기 쉽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이 병원은 24시간 분만, 신생아중환자실(NICU), 고위험 산모·신생아 진료를 동시에 수행하는 전남 동부권 유일의 여성·아동 전문병원이다.

전남 전체로 봐도 분만과 신생아 진료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여수·광양은 분만취약지 대열에 올라 있고, 광주까지는 차로 1시간 이상 걸린다. 

이런 곳에서는 '지금 당장' 받아줄 병원이 한 군데라도 없어지면 곧바로 다른 도시로 원정 출산을 가야 한다. 복지부도 전남을 "신생아 중환자 병상이 더 필요한 지역"으로 지정해 지원을 늘리고 있다.

병원은 2017년 전 자산을 기부해 비영리 의료법인으로 전환한 뒤, 달빛어린이병원·공공산후조리원·난임·임산부 상담처럼 수익이 안 되는 공공의료를 계속 맡아왔다. 

그러다 보니 30년 가까이 쓴 건물이 좁고 낡아, 지금 규모로는 앞으로 20~30년을 더 버티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6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새 병원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업은 돈을 남기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지역의 지속 가능한 분만·신생아 의료 체계를 세우기 위한 공익사업이다. 비영리 재단이기 때문에 가능한 결단이다.

감정평가 산식과 비교 대상, 왜 수의계약을 택했는지, 완공 시한과 의료 목적 외 사용 금지 조건이 충분한지 따져 묻는 건 의회의 역할이다.

다만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특혜"라고 단정하는 순간, 문제가 의료기관으로 옮겨 붙는다.

이번 건은 이미 의회가 한 차례 '공익성'을 전제로 의결한 사안이고, 의료 외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게 조건이 묶여 있으며, 대체할 만한 병원이 지역에 거의 없는 사업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더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요구는 타당하지만, "그 병원에 줄 일이 아니었다"는 식의 몰아붙이기는 현실과 어긋난다.

순천현대여성아동병원의 마스터플랜 
순천현대여성아동병원의 마스터플랜 

'특혜' 프레임이 어색한 이유...전국 이미 '분만 0곳'으로 가는 중

첫째, 공급자가 희귀한 분야다. 분만·신생아·소아 병동을 함께 운영하는 병원은 전국적으로 줄고 있다. 둘째, 비영리 구조로 이익을 배당하지 않는다.

셋째, 의료 외 용도 금지와 신축 기한이 묶여 있어 사적 개발 이익이 불가능하다.

넷째, 대체 비용이 크다. 이 병원이 흔들리면 산모와 아기는 순천이 아니라 광주·전주로 가야 한다. 이동 시간이 곧 위험이 되는 진료에서 이건 가장 비싼 선택이다.

전국 250개 시·군·구 가운데 77곳은 분만 가능한 병원이 한 곳도 없고, 한 곳만 남은 지역까지 합치면 절반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순천은 그나마 "아직 낳을 수 있는 도시"다.

여기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병원 하나를 행정 논란으로 흔들"면, 몇 년 뒤 똑같은 의회가 "왜 우리 지역엔 분만할 곳이 없느냐"고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중앙정부 역시 이런 이유로 "버티는 곳, 살아 있는 곳을 붙잡아라"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민간이던 병원이 자산을 기부해 비영리로 전환했다. 

수익성이 낮은 어린이·산모 공공서비스를 꾸준히 유지했다. 600억 원 넘는 신축을 자체 추진하면서 지역 고용까지 약 290명 늘린다.

의료계 일각에선 "이 정도면 지자체는 '왜 받았느냐'보다 어떻게 더 안전하게 지원할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행정이 할 일은 공공성 지표를 계약에 명시하고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지, 필수의료기관을 '특혜'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다"고 꼬집는다.

순천·여수·광양이 있는 전남 동부권은 전국에서도 분만·신생아 인프라가 약한 지역이다. 그나마 있는 유일한 병원이 바로 현대여성아동병원이다. 비영리 구조로 공공사업을 이어왔고, 지역 공익성을 인정받아왔다.

시는 이 병원을 지역에 남기기 위한 행정적 지원을 했다. 지역사회 일각에서 "시의회는 감정가와 절차를 더 공개하라 요구할 수 있지만, '특혜' 프레임으로 몰아가면 지역이 잃는 게 더 크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안은 "시유지를 왜 팔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지역에서 산모가 오늘 밤 위급해도 갈 수 있는 병원을 앞으로도 남길 것이냐"의 문제다. 

지금 필요한 건 흠집내기가 아니라, 지역 필수의료를 지켜낼 설계와 설명이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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