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지자체들이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배정받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제때 활용하지 못해 도내 안팎에서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국회 국정감사와 전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연이어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집행률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제도와 행정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전남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김성일 도의원은 "전남도는 2022년 제도 도입 이후 4년 연속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기금을 배분받았지만, 올해 6월 기준 집행률은 61.83%에 그쳤다"며 "광역 평균에도 못 미친다"고 비판했다.
일부 기초단체는 집행률이 1%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성군은 0.56%, 장성군은 0.98%로 사실상 사업이 거의 진행되지 못한 실정이다. 반면 고흥군과 화순군은 65% 이상을 집행하며 대조적인 성과를 보였다.
이 같은 문제는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토지보상 지연, 사전 행정절차 미비 등 전남도와 기초단체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사유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지난해에도 비슷한 취지의 질타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전남의 낮은 집행률이 단순한 행정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제도·행정·사업구조가 동시에 맞물린 '삼중 병목' 문제"라고 진단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이 기반시설 위주의 대규모 사업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전남은 고령농촌 중심의 소규모 지역이 많아 신속한 집행이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특히 "교육·보육·청년정책 등 주민 체감도가 높은 분야는 기금 활용 폭이 제한"돼 있어 "지역 현실과 제도 설계가 엇갈려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여기에 군 단위 지자체가 겪는 인력·역량 한계도 발목을 잡고 있다.
복잡한 타당성 조사, 토지 보상, 주민 의견 수렴 등 "사업 초기 단계부터 담당 인력이 부족해 실제 사업 속도가 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기금 관리가 연도별 집행률 평가 방식으로 운영되면서, 오히려 장기적인 인구정책보다 '빠르게 집행 가능한 사업'에 치중하게 되는 행정 왜곡"도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행정조직 내부의 책임회피 문화"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비·기금 사업은 사업 지연이나 환수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면 담당 부서가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주민 수요에 맞는 실험적·혁신적 정책보다 안전한 사업에만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전남은 전국에서 인구 감소가 가장 빠른 지역으로, 기초자치단체 상당수가 인구소멸위기 지역으로 분류된다.
전남도는 "기초평가제도 폐지, 출생기본소득 같은 현금성 지원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의 구조적 한계를 해소하기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소멸대응기금과 인구정책 전반에 AI 기반 관리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제안도 논의되고 있다.
'AI 분석 시스템'은 "지역별 인구·산업·정주여건 데이터를 통합해 소멸 위험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지자체별로 최적의 정책 조합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기금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토지보상 지연, 사업 일정 충돌, 행정절차 위험 요인을 사전 예측해 경고하는 시스템"도 가능해 "사업 지연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역소멸 대응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복잡하고 급박해지는 상황에서, 단순히 예산을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제도 개선과 행정 시스템 혁신, 데이터 기반 정책 도구 도입 등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전남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