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제조·공급하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기업 ASML에 소재나 부품 등 기술을 공급하는 국내 업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협력사와 공생을 중시하는 이 기업에 한국 기업이 협력사로 포함되지 않으면서 국내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왔다.
ASML은 EUV 노광장비를 제조·공급하는 업체다. EUV 노광장비는 반도체 미세공정에 꼭 필요한 장비로 꼽힌다. 웨이퍼에 빛으로 회로 모양을 새기는 역할을 한다. 기존 불화아르곤(ArF)이나 불화크립톤(KrF) 장비보다 빛의 파장이 짧아 선폭을 얇게 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EUV 장비가 7나노(nm) 이하 미세공정에 꼭 필요하다고 알려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펜으로 글씨를 쓸 때 짧게 잡고 쓰면 글씨가 잘 써지지만, 펜 위쪽 끝을 잡고 쓰면 잘 써지지 않는 점과 유사하다.
전 세계에서 EUV 장비를 제조할 수 있는 업체는 ASML 한 곳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 반도체 주요 제조사는 미세공정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EUV 장비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ASML 네덜란드 본사에 방문해 장비 공급 확대를 논의하기도 했다. ASML이 '슈퍼 을'이라 불리는 이유다.
ASML은 1년에 이 장비를 약 30~40대 정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20일(현지시간) 열린 2020년 4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31대의 EUV 시스템을 공급해 45억유로(약 6조원)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EUV 시스템에서 58억유로(약 7조 8000억원) 매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금액적으로만 환산하면 올해 40대 EUV 장비를 공급할 수 있다는 얘기다.
ASML은 협력사와 공생관계를 이루는 '생태계(Eco System)'를 중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비에 들어가는 재료 중 85%가 타 공급업체의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EUV 장비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협력사만도 900여 개에 달한다.
ASML의 대표 협력사는 독일 광학 업체 칼자이스다. EUV 장비 내에 들어가는 반사거울을 만든다. EUV 광원은 파장이 짧지만 공기에만 닿아도 빛이 흡수되는 단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ASML은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빛을 흡수하는 렌즈 대신 특수 제작된 반사거울을 여러 개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벨기에 업체인 아이멕(IMEC)도 ASML의 주요 협력사다.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 모양을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는 '싱글 패터닝' 기술 등을 함께 개발했다. 이 기술은 여러 번 회로를 찍는 '멀티 패터닝'보다 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ASML은 독일 베를린글라스(BERLINER GLAS), 독일 자이스(ZEISS) 등 기업을 협력사로 두고 있다.
아시아 국가인 일본 기업도 ASML 협력사로 포진해있다. 교세라(KYOCERA), 마쓰이(MATSUI) 등이 대표 기업이다. 세라믹 등 소재와 부품, 금형·사출 기술 등을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연구기관 등도 ASML 협력사로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900여 개에 달하는 ASML 협력사에 한국 기업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일부 업계에서는 아직 국내 소부장 기술이 세계가 요구하는 수준에 모자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ASML 기업 하나로 평가를 하기는 어렵지만, 국내 기업이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에 공급사로 등록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일본 수출규제 이후 한국이 소부장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만족하고 있지 않은지는 다시 검토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소부장 발전을 위해선 노광 공정 등 핵심 기술을 키워야 한다"면서 "ASML 협력사 사례가 증명하듯 국내 기술은 아직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ASML은 작은 컨테이너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가 된 기업"이라며 "우리나라가 반도체 강국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선 반도체 소부장 기술을 더 발전시켜 메모리와 비메모리 시장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슈퍼 을' 기업의 탄생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국내 노광 공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스앤에스텍은 노광 핵심소재인 포토마스크의 주원료인 블랭크마스크를 제조하고 있다. 솔브레인과 이엔에프테크놀로지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고 있고, 엘오티베큠은 노광 공정에 필수 환경인 진공 상태를 만들어주는 건식 진공펌프 기술을 갖고 있다.
ASML 관계자는 "현재 ASML이 추구하는 방향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기 때문에 협력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AI타임스 김동원 기자 goodtuna@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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