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의 지역회복력 평가에서 순천시가 전국 120개 기초지자체 중 '강소도시' 1위를 차지했다.
순천은 환경·경제·사회 3대 영역에서 위기 대응 역량과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아, 대도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원을 발굴해냈다는 평가다.
시가 강조한 산업 다변화, 광역경제권 구축, 정주여건 개선은 틀림없이 의미 있는 성과다. 문제는 이 성과가 얼마나 빠르고 넓게,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혜택으로 돌아오고 있느냐이다.
많은 지자체가 멋진 '비전'과 '전략'을 세우지만, 시민 입장에서 의료, 일자리, 주거, 여가환경의 질적 개선이 피부에 와 닿지 않으면 '1위'는 숫자에 그칠 수 있다.
순천이 지금까지 보여준 여러 시도들은 국내 다른 지자체보다 분명 한발 빠르고, 폭넓으며, 창의적이지만 동시에 더 꼼꼼한 모니터링과 시민과의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순천의 방향성은 적절했나?…산업다각화 & 치유산업 & 광역생활권 구축
바이오·우주방산·문화콘텐츠 등 첨단산업에 '치유산업'을 더한 전략이 심사위원들로부터 탁월한 선택으로 평가 받았다.
독일 바트 뵈르스호펜처럼 소규모 도시가 웰니스 관광으로 연간 90만 명을 유치한 사례를 보면, 순천의 자연·생태·문화유산을 활용한 치유산업 모델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독일 사례가 성공한 배경에는 ▲수십 년간의 전문성 축적 ▲의료와 숙박·서비스의 높은 수준 ▲국가차원의 인증제도 등이 있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현재 순천이 준비하는 갯벌치유플랫폼과 생태·웰니스 연계가 얼마나 '전문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여수·광양과 손잡고 교통·의료·관광·산업을 함께 묶는 전략은 수도권 일극화에 맞서는 강력한 카드다.
다만 시민들 입장에서 '행정 협의'가 구체적인 서비스 개선으로 언제, 어떻게 이어질지에 대한 가시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순천이 특히 잘한 점은 '의료'와 '녹지' '문화'에서 시민의 삶에 직접 닿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야간·주말까지 커버하는 달빛어린이병원, 심뇌혈관질환센터 유치, 무진동 구급차 등은 시민의 안전망을 키웠다.
도심 속 풍덕수변공원과 그린아일랜드, 국가정원과 연결된 생태축은 생활의 질을 높였다. 전남 최대 규모의 신대도서관, 순천어울림센터, 스포츠파크 개발 등은 여가와 문화의 저변을 넓혔다.
이런 변화는 대도시에서도 쉽지 않은 수준이어서, 타 지자체들이 참고할 만하다. 다만 정주 여건이 단지 시설의 양적 확충으로 끝나지 않도록, 질적 운영과 지속적 유지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해외 사례로 본 순천의 장점과 과제
순천이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전략들은 해외의 성공 사례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성 자체는 매우 적절하다.
하지만 해외 도시들이 성공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과정, 그 안에서 쌓은 전문성과 시스템을 고려하면, 순천도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치유산업 – 독일 바트 뵈르스호펜의 교훈>
순천이 주력하려는 '치유산업'은 특히 독일의 작은 도시 바트 뵈르스호펜과 유사한 지향점을 가진다. 이 도시는 인구 1만 8천 명에 불과하지만, 연간 90만 명 이상의 웰니스·치유 관광객을 유치한다.
그 배경에는 수십 년간의 투자와 연구로 쌓아온 '의료적 신뢰성'과 '전문화된 서비스'가 있다.
단순히 자연과 휴식만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요법과 과학적 치유를 접목하고 국가 인증을 받아 신뢰를 확보한 것이 핵심이다.
순천 역시 뛰어난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을 치유관광 자원으로 삼기에 유리하지만, 바트 뵈르스호펜처럼 전문성 확보와 표준화된 치유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지금 구상 중인 갯벌치유플랫폼과 연결 자원들을 단순한 관광지로 끝내지 않고,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유 콘텐츠로 발전시켜야 한다.
<광역협력 – 스위스 바젤의 사례>
순천은 여수·광양과 함께 광역경제권을 구축하고자 하고 있다. 이는 스위스 바젤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바젤은 국경을 접한 독일·프랑스와 함께 하나의 도시권을 형성하며, 교통·산업·주거까지 긴밀하게 협력한다.
덕분에 각기 다른 나라의 도시지만 시민들은 마치 하나의 도시에서 생활하듯 편리함을 누린다. 순천과 여수·광양도 '경제동맹'을 선언하고 공동대응에 나선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바젤처럼 선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과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 서비스(예: 통합 교통 요금, 통합 문화시설 이용, 산업벨트의 일자리 등)까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성공적이다.
<정주여건 – 덴마크 오르후스의 방식>
순천은 도심 내 녹지를 확충하고, 문화시설과 여가 인프라를 대폭 강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덴마크의 두 번째 도시 오르후스의 접근과 유사하다.
오르후스는 시민들이 어디서나 쉽게 녹지를 즐길 수 있도록 공원과 자전거도로를 조밀하게 설계했고, 도심 곳곳에 문화 허브를 두어 '살기 좋은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
순천도 오르후스처럼 시민들의 생활 동선과 수요를 중심에 두고 녹지와 문화시설을 설계한 점이 장점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시민이 직접 설계와 유지관리에 참여해 이용률과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산업다각화 – 핀란드 오울루의 모델>
순천이 미래산업(바이오, 우주방산, 문화콘텐츠)과 신산업을 유치해 산업 기반을 넓히는 전략은 핀란드 북부의 오울루와 닮아 있다.
오울루는 한때 한 산업에 의존했지만, ICT와 바이오를 중심으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연구기관이 모인 클러스터를 만들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뤘다.
순천도 첨단산업과 신산업의 유치에 성공했지만, 그 성과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청년 창업자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대기업 유치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순천은 이미 해외 사례들과 견주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비전과 성과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해외 사례가 말해주듯, '단기적인 성과'와 '하드웨어'에 그치지 않고, 시민 체감과 전문성,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를 얼마나 촘촘히 다져가느냐가 다음 과제다.
특히 시민 참여와 데이터 기반 점검을 강화하고, 표준화된 서비스와 인증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더해진다면 해외 사례들처럼 세계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첫째, 시민참여 강화 → 성과를 홍보하는 것 이상으로, 시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주인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정주여건 시민평가단'이나 '치유산업 자문단' 운영을 검토해볼 만하다.
둘째, 전문성 확보 → 치유산업은 단순히 '웰니스' 체험이 아니라, 과학적·의학적 효과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외 전문가와 연계한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데이터 기반 관리 → 현재 시설과 서비스의 이용률, 만족도, 유입인구 변화 등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공개해 시민과 함께 성과를 점검하면 좋다.
▪AI의 접목 가능성
순천의 전략에 AI를 접목하면 몇 가지 혁신이 가능하다.
▲치유산업 AI: 방문객의 건강 데이터와 취향을 기반으로 맞춤형 코스와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AI 헬스 어드바이저 도입.
▲스마트 정주 관리: 도시의 의료, 교통, 문화시설 이용 현황을 AI가 분석해 과잉/부족을 조정하고, 대기시간을 예측해 시민에게 안내.
▲산업유치 지원: 투자유치 및 기업 매칭 플랫폼에 AI를 활용해 순천의 강점을 필요로 하는 국내외 기업을 추천·연결.
순천시는 '작지만 강한' 도시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앞서가는 전략을 펼치고 있고, 특히 시민 삶의 질을 고려한 전방위적 정주여건 개선은 타 지자체보다 한발 앞서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성과를 시민이 직접 느끼는 정도'와 '지속성'에서 더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 순천의 강점을 더욱 공고히 하려면 전문성과 시민참여, 데이터 기반 운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AI 기술을 적절히 접목하면 한층 더 효율적이고 세련된 도시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다.
앞으로도 순천이 지역회복력의 모범 도시로서 시민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변화를 계속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