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국가산단은 한때 '한국 경제 성장의 심장'이라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석유화학제품은 세계적으로 공급이 넘치는데, 중국과 중동은 값싼 원료와 대규모 설비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원료·전기·탄소 비용이 높아, 공장을 돌릴수록 오히려 적자가 나는 현실에 부딪혔다.(여수 CAPA 국내 최다 627만 톤, 업계 가동률 하락)
정부와 전남도는 이런 위기를 막기 위해 「석유화학산업 특별법」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세금 감면, 정책금융 지원, 전기요금 감면, 기업 간 구조조정 협의 허용(공정거래법 특례) 같은 조치가 포함돼 있다.
여수시는 또 2026~2027년 국비 38억 원을 확보해 중소 협력사를 돕는 '위기대응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문제는 규모와 속도다. 법이 실제로 언제 시행될지, 시행령이 어떻게 나올지가 불확실하다.
또 38억 원 예산은 대기업 중심 산단의 구조조정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적다. 즉, 정부 지원은 필요조건일 뿐, 근본적인 수익성 개선책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꼽는 여수산단의 가장 큰 과제는 '과잉설비' 문제다. 값싼 범용 제품을 만드는 낡은 라인을 계속 돌리면 손실만 커진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고비용·저효율 설비를 과감히 줄이고, 기업 간 협의를 통해 통합·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특별법상 공정거래 특례 조항 필요하다.
동시에 "석유화학을 단순히 플라스틱 대량생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배터리·반도체용 첨단 소재 같은 '스페셜티 제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전환은 연구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최소 3~5년 이상 소요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RE100, 수소, CCUS…"시간은 오래 걸린다"
여수산단은 탄소중립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RE100), 수소 배관망,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US) 같은 미래 인프라를 추진 중이다.
내용은 ▲해저 고압직류(HVDC) 전력망: 20262030년 건설, 203134년 산단 RE100 달성 목표, ▲수소 배관망: 2025~2029년, 38km 구간 구축 계획, ▲CCUS 클러스터: 2027~31년 단계적 상용화다.
하지만 이들 사업은 인허가, 어업조정, 기술 검증 등 난관이 많아 단기간의 위기 타개책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지점은 정부 지원 중단이다. 만약 정부 지원이 중단된다면, 민간 주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대기업들이 함께 나서서 저효율 설비를 줄이고, 자산을 서로 바꾸는 산단형 통합 구조조정과 새로운 투자(스페셜티, 리사이클링, 수소·CCUS 설비)를 위한 전환 펀드를 조성해야 한다.
또 한편에선 정유와 석유화학 공정을 묶어 원료와 에너지를 함께 쓰는 효율화 전략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들로 전환할 때 얼마나 걸리고, 누가 바꿔야 하나? 전문가들은 "6개월 이내 즉시 할 경우, 가동률 낮은 설비를 선별하고, 공동 구매·비상자금으로 현금흐름을 방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2년 이내로 할 경우, 낡은 라인 폐지, 스페셜티 제품 파일럿 시작, 전력·원료 비용 절감이 이뤄져야" 하고, "3~4년 갈 경우, 스페셜티 양산라인 전환, 폐플라스틱 재활용·원료 다변화, CO₂ 포집 시범사업"을 하고, "5~7년의 장기일 경우는 RE100 달성, 수소 배관 완공, CCUS 상용화에 방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기업은 '생산능력 감축'과 '친환경 전환'을 실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노동자는 직무전환과 재교육에 동참해야 한다"면서 "지자체와 정부는 인허가·재정 지원·사회안전망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수산단의 위기는 단순한 경기순환이 아니라 구조적 위기다. 정부의 특별법과 지원금은 중요한 '버팀목'이지만, 위기를 근본적으로 풀 해법은 아니다. 실질적 해법은 설비 감축과 산업 전환, 즉 체질 개선이다.
지금처럼 "같은 논의"를 반복하다가는 위기를 넘기지 못한다. 이제는 실행이 답이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