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축이었던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 하지만 최근 들어 여수산단의 가동률은 하락하고, 수출과 고용도 줄어들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단순한 불황이 아니라 산업 전환이 지연된 구조적 위기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의 법인세 인상이나 탄소중립 정책을 탓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산업 자체의 전략 부재와 전환 실패가 근본 원인이라고 말한다.
여수산단 위기의 핵심 원인은 첫째, 공급과잉이다. 여수산단이 주력해온 범용 석유화학 제품은 중국과 중동 국가들이 저가로 대량 생산하며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공급은 넘치지만 수요는 정체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둘째, 디지털 전환이 미흡했다. 해외 석유화학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공장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데, 여수산단은 여전히 전통적인 생산 방식에 머물러 있다.
셋째, 친환경 전환이 뒤처졌다. 세계는 이미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여수산단은 탈탄소 기술 투자나 친환경 공정 전환에 늦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의무로 전환해야 하는 부담이 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수산단이 살 길은 무엇일까?
여수국가산단이 다시 활력을 찾기 위해서는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닌, 산업 구조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변화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제품 구조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여수산단은 범용 석유화학 제품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이는 국제 시장에서 공급 과잉에 쉽게 휘둘리는 구조다.
이제는 경쟁력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 예를 들어 생분해 플라스틱 같은 바이오 기반 소재, 정밀화학·스페셜티 케미컬(특수 화학제품), 재활용 화학소재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꿔야 할 시점이다.
이러한 제품은 수익성이 높고 환경 규제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둘째, AI 기반의 스마트 에너지 관리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여수산단에는 수많은 기업이 모여 있고,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하거나 과잉 배출을 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이들 기업 간의 에너지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서로 남는 열이나 전력을 공유할 수 있다면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이 크게 향상될 수 있다. 단지 '스마트팩토리'를 넘어서, '스마트 단지'로 진화하는 셈이다.
셋째, 지역 전체를 묶는 친환경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 여수산단만 따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인근의 광양, 순천과 함께 '그린 에너지 벨트'를 조성해 전남 동부권 전체를 수소·재생에너지 중심의 첨단 산업지대로 재편할 수 있다.
전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전기를 공급받고 수소 기반 산업으로 확장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넷째, 사람에 대한 투자, 즉 인력 재교육이다. 공정 자동화와 친환경 기술이 도입되면, 기존 인력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기계 조작이 아니라 데이터를 다루고, AI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해진다.
여수산단 내에 기술교육센터를 만들고, AI와 환경 기술 중심의 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면 산업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인력 기반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이처럼 여수산단의 생존 전략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산업 고도화와 기술 융합, 그리고 지역 자원의 연결이라는 복합적인 혁신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준비할 때, 여수산단은 다시 한번 국가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 기로에 선 공단…위기와 AI로 여는 새로운 길
- [기획-산단·AI 융합①] 여수국가산단, AI로 안전과 미래를 설계해야
- [기획] 여수산단에서 AI 기반 탈탄소 실험이 필요한 이유
- [기획] 여수산단, 디지털 관제 넘어 '스스로 운영하는 공장'으로
- 전기 저장 거대 배터리, 전남에 1조 5천억 원 규모 설치
- 여천NCC, 3,100억 원 자금난…부도 가능성 '경고등'
- 여수산단, 정부가 직접 수술대 올린다
- 여수석유화학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근본 해법은 구조 전환
- 여수산단, 정부지원만으로는 해법 될 수 없다
- 여수 석유화학업계, 왜 위기에 몰렸나?
- [기획] 여수산단, 위기돌파 위한 'AI 전환' 고민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