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여수 석유화학 산업단지가 흔들리고 있다. 한때 한국 경제성장의 심장이라 불리던 곳이 이제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가 직접 나선다"라며 구조조정 지시를 내리면서, 여수산단은 본격적인 '외과 수술'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여수산단의 위기는 단순히 국제 유가 변동이나 글로벌 경기침체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과 중동에서 값싼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장이 공급 과잉에 빠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산업 내부의 안일한 대응이었다. 친환경·정밀화학 같은 미래 산업으로 미리 전환하지 못했고, 탈탄소라는 세계적 흐름에 둔감했던 경영 전략도 치명적이었다.
여기에 노후 설비와 잦은 안전사고, 그리고 지자체 차원의 종합대응 전략 부재가 겹치면서 스스로 무너진 측면이 크다.
정부 개입의 성격…구원이 아니라 '재편' 짙어
이번 정부의 개입은 단순한 '구제금융'이 아니다. 체질개선을 강제로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핵심으로 전망된다.
재무구조가 취약하거나 친환경 전략과 맞지 않는 기업은 법정관리나 인수합병(M&A) 대상으로 정리될 수 있다.
자구책 없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되고, 반대로 사업 전환 계획과 고용 재편 전략을 제출하는 기업은 조건부로 자금을 지원받게 된다.
석유화학 중심의 고배출 공정은 매각이나 철수 압박을 받을 것이며, 정부는 정밀화학·수소·친환경 신소재 쪽으로 방향을 유도하고 있다.
즉, 이번 조치는 산업을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이 아니라, 낡은 부분을 도려내고 새로운 체질로 바꾸는 외과 수술에 가깝다.
여수산단은 약 2만5천 명 이상의 직접 고용과 수만 명의 협력업체 종사자를 거느린 초대형 산업 벨트다. 여수·순천·광양을 잇는 지역 경제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감원, 협력업체 연쇄 도산, 세수 감소와 지역 상권 위축 등 지역경제 전반에 파장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단순한 일자리 유지가 아닌, 전환교육·재배치·신산업 육성을 통한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
회생 가능성은? "작아지되, 정교해져야 산다"
전문가들은 여수산단의 회생 조건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 '생산능력 축소'다. 현재 과잉 설비를 줄여 공급과 수익성을 정상화해야 한다.
둘째, '산업 전환'이다. 범용 석유화학 중심에서 벗어나 정밀화학·친환경 소재로 이동해야 한다.
셋째, '안전·환경 신뢰 회복'이다. 반복되는 사고와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역사회 지지를 잃게 된다.
넷째, '공동운영·M&A 활성화'를 꼽았다. 기업 간 협력을 통한 비용 절감과 경쟁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이 조건들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여수산단은 단기적 지원으로 연명하다가 결국 더 큰 충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왜 대기업도 미리 대비하지 못했나?
여수산단 위기의 근본 배경에는 '성장 신화의 그늘'이 있다. 과거에는 '규모의 경제'가 곧 경쟁력이었지만, 지금은 글로벌 탈탄소·ESG 시대에 '질적 경쟁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그 신호를 무시하고, 범용 제품 생산 확대에만 매달렸다.
여기에 지배구조 문제로 의사결정이 늦고, "누가 먼저 줄이느냐"를 두고 눈치만 보다가 결정적 시기를 놓친 것이다.
여수산단의 위기는 한국 석유화학 산업 전체의 축소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기대 설 수 없다. 생존의 길은 결단과 혁신이다.
정부는 질서 있는 축소와 전환을 이끌어야 하고, 기업은 고통을 감수한 결단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꿔야 하며, 지자체는 새로운 산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여수산단의 미래는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혁신하려는 의지와 실행에 달려 있다는 것이 지배적 분위기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