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가들이 인공지능(AI) 주권을 의미하는 '소버린 AI'에 매달리고 있지만, 자체 모델 개발을 넘어 모델을 구축하고 운영할 전반적인 역량까지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자체 인프라 구축이 불가능하면, 소버린 AI는 엔비디아 사업을 돕는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RAND) 연구소의 레나르트 하임 연구원은 30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소버린 AI가 현재는 무의미한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각국 정부가 답해야 할 진짜 질문은 '이 지출을 통해 무엇을 달성하려는가'라는 것"이라며 "아직 많은 국가가 답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토니 블레어 연구소의 기술 정책 고문인 키건 맥브라이드도 같은 점을 지적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대형언어모델(LLM)을 구축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대부분 정부가 최전선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모델을 구축할 여력이 있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답은 거의 확실히 아니오"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소버린 AI라는 용어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2023년부터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계속 언급하며 널리 알려졌다. '데이터 주권'에서 '모델 주권'으로 의미도 확대됐다.
그리고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에서 엔비디아가 유럽의 각국 정부 및 기업들과 대규모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소버린 AI가 각국의 우선 과제로 자리 잡았다.
세계 3위에 해당하는 AI 강국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영국을 방문,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옆에서 "AI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엔비디아 CEO를 향해 "젠슨, 당신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라고 칭찬했다.
엔비디아는 이에 맞춰 영국에 12만개의 '블랙웰' GPU를 배치할 계획을 밝혔다. 이는 유럽 최대 규모라고 강조됐다.
이 회사는 앞서 지난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를 순방하며 중동으로도 사업을 확대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피터슨 연구소의 마틴 초르젬파 선임 연구원은 엔비디아가 이전 기술 대기업들의 전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주요 기술 기업들은 모두 글로벌 사용자 기반과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네트워크 효과를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픈AI도 이제는 소버린 AI를 비슷하게 활용하고 있다. 샘 알트먼 CEO는 방한에 앞서 지난달 24일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소버린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해 독일 공공 부문에 AI 기술을 공급한다"라고 발표했다.
Had fun being in Germany to launch a sovereign cloud offering with SAP and Microsoft; important to us to help governments use our frontier models.
— Sam Altman (@sama) September 26, 2025
엔비디아에 도전하는 네덜란드 칩 스타트업 악셀레라 AI의 델 마페오 CEO는 "현재 유럽 기업에 제공되는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대부분이 미국 하이퍼 스케일러에서 제공되고 있다"라며 "유럽은 우선 하이퍼 스케일러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영국 투자자들은 진정한 소버린 AI를 달성하려면 화웨이나 캠브리콘, SMIC 등 새로운 반도체 설계와 제조 산업을 구축하려는 중국과 비슷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배짱, 헌신, 그리고 진정한 자금은 물론, 많은 정치인에게 부족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엔비디아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뱅크 오브 아메리카 분석가들은 앞으로 몇년 안에 소버린 AI 시장이 500억달러(약 7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는 오픈AI와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이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5000억달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임대준 기자 ydj@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