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산업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남하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고착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최근 대기업·글로벌 기업의 투자 흐름은 완전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전남 해남·영암·목포 일대를 중심으로 반도체·전력·AI·신재생에너지 등 핵심 산업 인프라가 집적되며 새로운 성장축이 형성되고 있다. 일회성 공장 건설이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체제 전환형 투자'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전남행 가속화는 크게 세 가지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첫째, 에너지 중심축의 전환이다. 기업이 찾는 것은 값싼 전기가 아니라 ‘무탄소 전기’다. 세계 최상위 제조·IT 기업들은 이제 생산공장이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을 먼저 고른다.
특히 AI·반도체·클라우드 산업은 탄소 규제가 강화된 환경에서 'RE100 충족 가능 여부'를 투자 결정의 1순위로 올려놓았다.
전남은 국내 어디도 따라올 수 없는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해상풍력, 태양광, 연안자원까지 결합한 이 지역의 이론적 발전량은 약 400GW 이상 수준으로 평가되며, 이는 현재 국내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몇 배에 달한다.
단순한 '전기 생산지'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장기·대규모·무탄소 전력 조달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지역이라는 점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수도권은 이미 변전·송전망 포화에 가까워 신규 전력 인입에 어려움이 크고, 공업용 전력 확보도 제한적이다. 반면 전남은 국가 주도로 대규모 송전망 확충이 병행되면서 기업 입장에서 전력을 이유로 투자 결정을 미룰 필요가 없는 유일한 지역으로 부상했다.
둘째, AI 컴퓨팅의 '현지화'다. 해남·영암이 국가 AI 인프라의 남측 관문으로 자리잡았다. AI 산업의 경쟁력은 데이터나 모델보다 컴퓨팅 인프라 확보 능력에서 갈린다.
최근 해남 솔라시도와 인근 산업지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 일대가 국가급 AI 연산 허브로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ICT·제조 대기업과 글로벌 AI 기업이 함께 조성 중인 초대형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는, 수천~수만 대 단위의 최신 GPU 인프라를 기반으로 구축된다.
특히 AI 모델 학습 전용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인접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면 전력 공급–AI 인프라–신산업 투자가 하나의 순환 구조로 묶이게 된다.
여기에 케이블·전력·전송기술 기업들이 전용 항만·생산기지 투자에 나서면서, 전남은 단순히 서버를 두는 장소가 아니라 국가 AI 컴퓨팅 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전략 산업지대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셋째, 전국 최대 규모의 투자 인센티브다. 기업 전략과 지역 전략이 맞아떨어진 사례다. 전남도의 기업 유치정책은 기존 지방정부의 '보조금 지원' 수준을 넘어, 투자 위험을 지역이 직접 분담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입지보조금·설비보조금은 물론, 대규모 프로젝트에는 수백억 원 규모의 현금 지원도 가능해 대기업뿐 아니라 해외복귀(리쇼어링) 기업까지 수용 폭을 넓혔다.
기업 입장에서 전남 투자의 장점은 ▲저렴한 부지 가격과 대규모 부지 확보의 용이성 ▲전국 최고 수준의 공업용수 공급 능력 ▲정부 차원의 송전·변전 인프라 조기 구축 ▲지역 차원의 거주·교육·정주 인프라 확충 프로젝트 병행요소가 동시에 충족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인센티브 경쟁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비용 구조를 낮추고 장기 생산 능력을 안정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수도권 중심 산업구조의 균열…전남이 차세대 산업지대로 재편되는 이유
이제 기업의 투자 기준은 '수도권 접근성'보다 에너지·AI·부지·인프라의 총합 경쟁력으로 이동했다.
수도권은 공간·전력·환경규제라는 삼중 제약에 묶여 있는 반면, 전남은 국가 산업 전략의 관점에서 봐도 미래 먹거리 산업의 요구조건을 대부분 충족한다.
전남에서 생산된 재생전력으로 데이터센터가 AI를 만들고, AI 기술이 다시 지역 제조·에너지 산업을 고도화하는 구조는 한국이 향후 10년간 추구해야 할 산업 생태계 모델과도 맞닿아 있다.
전남이 한국 산업지도의 새로운 중심축으로 부상하는 흐름은 일시적 트렌드가 아니라 전력·AI·입지 경쟁력에 기반한 구조적 변화로 평가된다.
수도권 중심 산업 구조가 흔들리는 지금, 전남은 한국 경제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중요한 시험대이자 새로운 전략적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