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갇혀 있던 디지털 혈류가 지방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의 'AI 인프라 대전환' 기조와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 행보가 맞물리면서, 지방 도시들이 새로운 산업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해남 솔라시도 (AI타임스DB)
해남 솔라시도 (AI타임스DB)

전남 해남, 경북 포항 등지에 추진 중인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IT 시설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디지털 산업단지'로 평가된다. 울산에 이어 포항과 해남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기업들의 'AI 거점 구축'이 구체화되고 있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인천과 경기 일대에 이어 울산에 AI 특화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으며, 오픈AI는 삼성·SK와 손잡고 포항과 전남 지역에 전용 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엔비디아는 여기에 26만 장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정부가 계획한 물량의 5배가 넘는 규모로, 한국의 AI 인프라 경쟁력을 단숨에 세계 3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치다.

이 같은 투자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AI 산업 생태계의 중심축'을 지방으로 옮기려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발전소 인근, 풍부한 수자원, 그리고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부지를 갖춘 지역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한 곳이 바꾸는 도시

국제 회계법인 PwC는 데이터센터 1곳이 직접 일자리 1개를 만들면, 그 여파로 약 6개의 간접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분석한다. 전력·통신·보안·유지보수 같은 연관 산업이 함께 성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오하이오주 사례를 보면, 2017년 이후 데이터센터 산업이 9만5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고, 15조 원 규모의 지역경제 효과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전라남도는 해남 솔라시도 지역에 계획 중인 AI 데이터센터(20MW 기준)가 약 5000억 원의 경제적 효과와 1500명 내외의 고용을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200MW 규모로 확장될 경우, 효과는 10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SK그룹이 AWS와의 협력을 통해 구축하는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조감도 (사진=SK그룹)
SK그룹이 AWS와의 협력을 통해 구축하는 'SK AI 데이터센터 울산' 조감도 (사진=SK그룹)

지방소멸의 해법 될까

전남은 현재 인구 소멸 위험지수가 30%대를 넘어선 '경계 단계' 지역이다.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 고용 창출과 산업 활성화를 통해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전국적인 전력망 불균형은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이며, 신규 원전 가동 지연으로 공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지역별 에너지 특성을 고려한 권역별 AI 인프라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호남은 재생에너지, 영남은 원자력 중심으로 전력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는 이미 데이터센터 공사 지연이 잇따르고 있다. 인허가를 받은 33건 중 절반 이상이 주민 민원으로 멈췄다. 전자파 우려, 경관 훼손, 열섬 현상 등의 이유다.

이에 정부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인식 개선에 나섰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고압선의 전자파는 WHO 기준치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일부 지역에는 '전자파 신호등'을 설치해 주민이 직접 수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카카오는 자체 데이터센터 설립 후 약 2조 원의 생산유발효과를 내며, 지역 상생 모델을 강조했다.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창고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연결하는 디지털 허브"라는 기업 관계자의 말이 상징적이다.

전남 해남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AI 인프라가 자리 잡으면, 인재와 기업, 전력과 산업이 연결되는 '디지털 순환 경제'가 가능해진다.

수도권 집중이 불러온 지역 불균형을 완화하고, 지방 소멸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구조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데이터센터가 지역경제의 산소호흡기가 되기 위해서는 전력망과 주민 신뢰, 인재 양성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AI 시대의 심장이 지방에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박동이 지역의 새로운 생명력을 불러올 수 있을지, 그 답은 이제 '데이터' 위에서 쓰여지고 있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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