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에 인공지능이 참여하다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기존에 분절되어 있던 다양한 영역 간 연계와 융합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관련 기술은 이러한 흐름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수적인 의료 환경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건강증진이나 질병 예방과 같은 웰니스의 영역을 넘어 진단, 검사, 치료, 투약 등 전통적 의료 시스템의 범주에서도 새로운 기술 요소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최근 본원에서도 인공지능 기반 안저 영상 판독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아직 법률이나 제도와 같은 사회적 합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인공지능의 거시적 전망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의료 현장의 모습은 오래지 않아 분명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이후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의료는 의학과 다르다
‘의학’은 엄밀한 인과성이 지배하는 과학의 범주에 속하는 개념이지만, ‘의료’는 과학 경계를 넘어서는 더욱 넓은 외연을 가진다. 의료에는 국가, 인종, 남녀, 노소, 문화, 관습, 제도, 법률, 경제, 빈부격차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세상 만사의 모든 요소가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의료라는 세계에서 과학적 인과론에 근거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만능 열쇠처럼 통용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필자는 사람의 마음, 즉 ‘감성’에 대한 고려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당뇨병 환자들은 시간을 정해 알맞은 약을 복용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며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건강 유지에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환자들은 각자 저마다 가진 사연에 의해 건강한 습관 관리에 실패한다.
"집에 변고가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족을 간병하다 보니 마음 고생이 심했다.", "최근 소화가 잘 안되어 당분이 많은 음식을 먹었다.", "약을 먹기 싫어 여주와 돼지감자를 먹었다.", "코로나 때문에 손주를 돌보느라 운동이 어려웠다.", "집안에 경사가 있어 과음, 과식을 피하기 어려웠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심지어 "수십년 간 진료를 담당하던 노교수 대신 젊은 의사가 처방한 약이 미덥지 않았다." 까지. 다채로운 사연에 의해 환자의 혈당과 건강 상태가 다양하게 변하는 것을 필자는 경험했다. 따라서 실전 ‘의료’에서는 같은 약을 쓰더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고, 약제를 감량했는데 효과가 오히려 좋아지고, 어떤 의사가 처방했는지에 따라 같은 약이라도 효과가 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으로 의료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의 효용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생산성이나 이익 극대화를 우선시한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원이 소요되는 공중 보건이나 의료 서비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불가피하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효율이나 이익 극대화를 넘어 사람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실질적인 기여로 이어져야 하며, 사회시스템 내 건강 향상을 전제로 발전해야 한다. 기술 혁신이 기존 의료 환경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의료 환경의 구축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이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필자가 번역에 참여한 도서 "딥메디슨"에는 인공지능으로 의료의 ‘인간적인’ 미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저자 에릭 토폴 박사의 생각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의료 분야의 발전은 오히려 의료의 비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말았지만, 인공지능은 이러한 흐름을 뒤집어 의사와 환자의 인간적인 관계를 회복할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오진율 감소, 치료율 향상 등 기존 의료시스템에 혁신을 불러오는 동시에 의사와 환자 간 유대관계ㆍ신뢰 회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부여해 더욱 인간적인 의료환경이 구현되리라는 저자의 따뜻한 전망이 인상적이다.
인공지능이라는 미래의 도구를 활용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적인’ 의료 환경을 회복해야 한다는 이 책의 내용은 인공지능을 다룬 기존 책들의 관점과 차이가 있어 인상적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인공지능 세상에서 이 책의 내용 상당부분은 곧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기술을 이용해 진정한 돌봄을 회복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언제나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이상열 경희의대 교수 겸 "딥메디슨" 역자 rheesy@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