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잘 알기란 그리 쉽지 않다.
가격은 물론 어쩌다 맘에 드는 와인을 찾아도 동일 제품을 구매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게다가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아는 건 없지만 맛없는 걸 먹고 싶지는 않은' 초보자에게 와인은 까다로운 술이다.
돈만 내면 영화나 드라마도 추천해주는 시대에... 와인은 그런 게 없을까?
그래서 등장한 게 인공지능(AI) 소믈리에다. 챗GPT 등장으로 지난해말부터 해외에서는 간간히 AI 소믈리에 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대부분 기존에 마셨던 와인을 AI가 기억하고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국내에도 AI 소믈리에가 등장했다. 게다가 질문에 답하는 소믈리에가 아니라, 실제 와인 맛을 감지하고 이를 수치로 데이터베이스화해, 추천해 주는 시스템이다.
서울 성수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AI 소믈리에 쇼룸 겸 매장 '와인쌤'이다. 지난 6월 코엑스에서 열린 'AI&빅데이터쇼'에 처음으로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던 지라 기대가 컸다. 특히 어찌나 날씨는 더운지, 이동 중에 벌써 '한잔' 생각이 났다.
일단 탁 트인 쇼룸은 와인과 제법 잘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테이블과 장식물을 최소화, 개방감을 살린 듯했다. 바디감이 과하지 않고 산뜻한 와인처럼, 적당히 고급스러운 캐주얼함이 풍겼다. 뒤늦게 돌아본 내부 좌측에는 '첨단 기술을 갖춘 와인 벤딩 머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와. 거대하다'
첫인상은 그랬지만, 이내 벤딩 머신 몇대를 이어 붙인 모듈형 장치라는 걸 깨달았다. 한쪽엔 '병'으로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셀러형 머신이, 바로 옆엔 한 잔 시음이 가능한 디스펜서형 머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병을 살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기계를 만지작거려 봤다.
'병으로 사면 세일을 많이 하네.'
개인적으로 가볍게 한 잔 즐기고 싶었기에 디스펜서형 머신으로 다가갔다. 똑똑한 기계를 믿고 일단은 키오스크를 터치했다.
'역시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네.'
'안투 까베르네 쇼비뇽' '안투 쉬라' '페냐롤렌 까베르네 쇼비뇽' '볼베르 뗌프라니요' '몰리두커 더 복서'.... 평범한 와인 매장이라면 전문가의 조언을 기다리거나 말도 안 되는 직감을 믿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거침없이 와인을 클릭해 '맛 그래프'를 확인했다. '와인쌤 가이드', 즉 AI 기능이다.
AI는 와인 맛을 아홉 가지로 구분했다. 단맛, 신맛, 짠맛, 떫은맛, 쓴맛, 감칠맛만 있는 줄 알았더니, 첫맛뿐 아니라 뒷맛도 분석했다. 뒷맛이 시큼하거나 씁쓸하거나 떫거나. AI 맛 분석 알고리즘으로 그 정도를 정량화했다. 스포츠 게임에서 선수 능력을 보여주는 식스툴 뭐 그런 식으로 보였다.
비슷한 느낌의 다른 와인을 찾는다면 아래쪽 추천 리스트를 참고할 수도 있었다. 오, 유사도를 퍼센트에이지로 표시해 주다니. 직접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잖아. 이런 식으로 서너잔만 시도해 보면, '인생 와인'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선택은 안투 까베르네 쇼비뇽이었다. 가격대는 가장 저렴한 한잔당 2500원이었다. 단맛은 아주 약한 편이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성인 인증이었다. 요즘은 모바일 인증 QR코드나 신분증 시스템이 편리해져, 그리 어렵지 않았다. 카카오톡을 이용해 본인 인증을 마쳤다. 음. 이제 나오는 건가.
일회용 컵에 와인이 자동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이번엔 좀 특별했다. 지켜보던 직원이 손수 컵을 들고나왔다. 와인이 나오는 곳에선 불이 깜빡였다. 레버를 당겨 와인을 따랐다. 폼이 났다.
'조금 아쉬운 양이긴 한데.'
한 모금 음미하니 그 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생각보다 세다.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AI 분석이 꽤 정확하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단맛은 거의 없고 쓴맛과 떫은맛이 강렬한 느낌. 이 정도 분석력이라면 와인 전문가가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또 내가 찾던 와인이 없더라도 충분히 유사한 맛을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재방문 욕구가 절로 생겼다.
소소한 안주도 갖춰져 있었다. 다음엔 짭조름한 소시지 종류에 아주 달달한 와인을 곁들여 '단짠단짠'을 즐겨야지.
지인 입맛을 안다면 전문가인 척, 딱 어울리는 와인을 선물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이거 좀 신선한 아이디어인데.
그리고 매장을 떠나 돌아오는 내내 후회가 맴돌았다. '화이트 와인도 마셔볼걸.'
한편 와인쌤 성수 쇼룸을 운영하는 기업 상상을 만드는 사람들(와인쌤, 대표 방준호)은 자체 연구를 추진, 일명 '전자 혀' AI 알고리즘으로 객관적인 와인 맛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국내에서의 다수 가업으로부터 호평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해외 진출도 시도 중이다.
앞으로도 벤딩머신 및 AI 기술 고도화와 와인 데이터베이스 확대 등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설치 장소 확대가 시급했다.
장세민 기자 semim99@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