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라는 단어 맞으려면 지금 당장 궤도 수정해야
전남 여수시는 2026년 여수세계섬박람회를 "남해안 글로벌 도시 도약"의 이정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외부 시선에서 박람회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글로벌은커녕 지역 안에서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반쪽짜리 준비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먼저 흔들리는 기획의 오락가락 연속이다. 주행사장 진모지구는 매립지 기반 공사가 지연되며 침수 위험이 제기됐고, 개최 시기도 폭염과 태풍을 고려해 7~8월 변경이 검토됐지만 후속 조치는 흐지부지됐다.
초기 예산 248억 원조차 자체 관광수입으로 충당하겠다는 희망적 추정에 의존하며, 지금은 국비·도비 확보를 위한 정치적 설득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계획의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획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 원칙'인데, 여수시는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두 번째, "섬이 주제인데, 섬이 없다"는 지적과, 이로 인한 "특색 있는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이다.
여수시는 '섬'을 주제로 한 세계 최초의 박람회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프로그램은 크루즈 체험, 관광전시, 수상퍼레이드, 콘서트가 대부분이다.
섬 주민들의 삶을 보여주거나, 기후위기 속 섬의 지속 가능성, 바닷길을 생명선 삼는 주민들의 문화 등 '섬 그 자체'에 대한 탐색과 재해석은 전무하다.
세계박람회의 핵심은 콘텐츠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는 '더 나은 도시, 더 나은 삶'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도시기획, 환경설계, 기술혁신이 주요 테마로 녹아들었다.
그에 비해 여수는 슬로건조차 구체성이 없고, 전시 기획은 외주 위탁 수준이다. 섬이라는 대상을 관광 상품처럼 포장만 하고 있을 뿐, 진정성 있는 담론은 실종됐다.
국제성은 허상, 참가국도 후원도 파트너도 '불확실'
여수시는 참가국 30개국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확정된 국가는 필리핀 세부시와 팔라우 단 2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입장권 수익 목표 120억 원 중 현재까지 확보된 후원금은 단 5억 원 수준이다. 후원 기업 대부분은 지역 내 공공기관이거나 농협, 수협 등 반관계 성격의 단체다.
이쯤 되면 '국제행사'보다는 '지자체 이벤트'에 더 가깝다.
국제행사의 성패는 참가국, 국제기구, 해외 언론, 글로벌 기업 등 '외부 파트너십의 규모와 진정성'에서 갈린다. 지금 여수는 이 연결고리가 하나도 없다.
인프라도 미비하여 교통·숙박·편의성까지 아직 미완성이다. 진모지구 행사장 접근성은 낮고, 주변 도로 및 주차시설은 아직 설계 단계다.
여수공항 국제선은 단기 임시 노선 유치 정도만 검토되고 있으며, KTX는 여전히 광양 경유 우회 노선으로 여수 직결 효과는 제한적이다.
단적으로 말해, 관람객 수백만 명을 수용할 도시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 박람회'를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여수시의 준비가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정원도시'라는 명확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전국 지자체의 녹색 정책을 연결했고, 독일·캐나다 등 도시정원 전문가들과의 연계를 통해 실질적 글로벌 담론을 형성했다.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은 문화예술 중심의 B급 행사이지만, 매년 50개국 이상 예술단체와의 연결고리를 이어가며 예산은 작아도 콘텐츠의 깊이와 국제성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수는 규모만 키우고 외형만 부풀렸을 뿐 콘텐츠는 비어 있고, 외부 연결은 끊겼으며, 인프라는 미완성 상태다. 진짜 국제행사란, 규모가 아니라 구조가 다른 것이다.
여수세계섬박람회는 지금 이대로라면, 국내 관광홍보 행사에 불과하다. 섬다운 주제성도 없고, 국제행사다운 파트너십도 없으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행사인가'에 대한 철학도 없다. 남은 1년 반, 행사의 본질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외부 국제행사 전문가에게 기획과 실행 전권을 맡겨라. 정치와 행정은 한 발 물러서고, '섬과 세계를 잇는 철학'을 기획할 수 있는 인물에게 모든 권한을 부여하라. 지금은 구색 맞추기가 아니라, 정체성을 세워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수세계섬박람회는 지역의 국제적 자산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세계는 준비된 도시를 선택하지, 사진 찍기 바쁜 도시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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