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둔화와 미·중 기술 패권 갈등 속 수출 규제 여파로 삼성전자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엔비디아와의 협력 차질에 파운드리 가동률 저하까지 겹치며, 반도체 중심의 회복 기대에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8일(현지시간) 잠정 실적 발표에서,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4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는 에프앤가이드 기준 시장 전망치 6조2000억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며, 최근 6개 분기 중 가장 낮은 실적이다. 매출은 74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1% 소폭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실적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미국의 중국 AI 반도체 수출 제한과 이로 인한 재고자산 평가손실을 지목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공급 지연과 미중 규제 여파로 전 분기 대비 수익성이 하락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개선된 HBM 제품에 대한 고객 평가가 진행 중이며, 일부 출하도 이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고객사나 물량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업계 전문가들은 특히 엔비디아로의 칩 공급 지연이 실적 부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현재 삼성은 엔비디아에 HBM3E 공급을 준비 중이지만, 기술 평가와 인증 과정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파운드리 부문 역시 미국의 수출 통제와 낮은 가동률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됐다.
삼성전자는 해당 부문이 2분기에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하반기부터 수요 회복과 가동률 개선에 따라 적자 폭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미국 정부가 대만 TSMC에 중국 고객사에 대한 첨단 칩 출하를 중단하라고 명령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삼성전자도 비슷한 통제를 받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3분기부터 실적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비엔비디아 고객사를 대상으로 한 HBM 공급 증가와 하반기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가 실적 개선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번 실적은 삼성전자 AI 반도체 사업의 체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달 말 구체적인 사업 부문별 실적을 포함한 확정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다. HBM 시장에서는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선도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글로벌 고객사들과의 신뢰 회복과 공급 안정화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