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소재 산업 중심지 꿈꾸는 광양만권, 과연 새 산단이 해답일까
전라남도가 순천·광양을 중심으로 '미래첨단소재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본격화하며 이차전지와 반도체, 신소재 산업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남권에 이미 100개 이상의 산업단지가 운영 중이고, 분양률이 98%를 넘는 상황에서, 과연 새로운 산단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정밀한 산업 고도화와 공간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인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요구된다.
왜 지금, 왜 광양만권인가?
광양만권은 이미 포스코와 여수국가산단 등 중후장대한 산업 기반 위에, 최근에는 이차전지, 첨단화학소재, 기능성 금속소재 기업들이 속속 입주하고 있는 이른바 '전남 동부권 신산업 벨트'의 중심축이다.
전남도는 이 지역이 타 지역에 비해 지리적 이점(부산광양여수 항만망)과 기존 중간재 인프라, 전력·용수 공급망 등을 보유하고 있어 첨단소재 산업 집적지로 최적지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고분양률에도 불구하고 일부 산단에서는 입주기업들의 경영난, 고용 불안정, 시설 노후화, 환경민원 등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표출되고 있어 단순히 '새로운 산단'만이 해답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된다.
산단 조성이 아니면 미래산업 육성이 어려운가?
전남도는 신규 국가산단이 없으면 이차전지·반도체·신소재 관련 기업의 투자처 확보가 어렵고, 결국 타 지역으로 유출될 우려가 높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 들어 "정부 대규모 투자사업들이 경기권이나 충청권에 쏠리는 현상을 우려"하며, "국가 차원의 지원과 전략적 균형 배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가산단 조성 이전에 기존 산단의 기능 전환과 유휴공간 고도화 전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즉, 규모 확장이 아니라 질적 재편이 우선이라는 반론이다.
전남권 산단은 그간 중화학공업 중심, 고탄소 배출, 노후 인프라, 산업 다양성 부족 등으로 대표돼왔다.
여수산단만 해도 중대재해 다발지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으며, 최근 광양·여수 일대에서도 젊은 인력의 이탈과 고령화 문제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새 국가산단이 단순 입주공간 확보가 아닌, 다음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로 작동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가산단, 어떤 '새로운 조건'을 갖춰야 하는가?
이번 국가산단은 RE100 기반의 전력 공급 체계 구축, 친환경 공정 설계, 폐수·폐열의 순환 활용 인프라 조성 등을 통해 탄소중립형 산단 모델로 조성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국제 환경 기준을 충족하고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또한 청년 인재 유입과 장기 정착을 위한 생활 여건 개선에도 중점을 둔다. 입주 기업과 연계한 기숙사형 스마트 타운, 복합문화공간, 창업·교육 연계 시설 등이 조성돼 청년들이 일하고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예정이다.
이와 함께 AI 및 디지털 기반의 첨단산업 지원 체계도 강화된다. AI와 신소재를 융합한 R&D 클러스터, 산단 전반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는 디지털 트윈 기반 통합 시스템을 통해 고부가가치 산업의 집적과 운영 효율을 동시에 실현할 방침이다.
특히 산학연 협력 부문에서는 순천대학교, 여수국가산단 내 기술센터 등과 유기적 연계를 통해 현장 맞춤형 인재 양성과 기술지원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지역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 체계 강화도 적극 추진된다.
현재 연구용역 중간결과에 따르면 117개 첨단기업이 입주의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분명 전남에 대한 산업계의 기대를 보여주는 신호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실질적으로 장기적인 경영성과를 낼 수 있는 '공간'과 '제도', '사람'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지 입주로 끝날 수 있다.
또한 국가산단 지정이 결국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전략과의 정합성, 대선 공약화 여부, 부지 확보 및 주민수용성 등 다층적인 조건을 충족해야 하기에, 지금이야말로 더욱 정교한 전략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산단은 산업의 허브이자 도시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순히 '땅을 더 마련한다'는 식의 구상은 이제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전남 동부권의 국가산단 추진은 미래산업을 향한 전남도의 강력한 의지와 전략적 비전이 결합될 때만이 진정한 '첨단소재 중심지'라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산단의 가치는 '지금'이 아닌, 10년 뒤 전남의 모습 속에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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