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과 고등교육의 고유영역을 혼동한 과도한 행사 참여

지난 10일 목포대학교에서 열린 '국가중심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는 교육부와 전국의 국·공립대 총장들이 대학 재정과 정책을 논의하는 매우 전문적이고 자율적인 교육계 내부 협의체다. 

이런 자리에서 전라남도지사가 마이크를 잡고 축사를 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다. 더 들여다보니, 그 의아함은 곧 우려로 바뀌었다.

2025년 국가중심 제1차 국·공립대 총장협의회가 10일 목포대학교에서 열린 가운데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년 국가중심 제1차 국·공립대 총장협의회가 10일 목포대학교에서 열린 가운데 김영록 전라남도지사가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물론 이 회의는 2025년 협의회장교로 선출된 국립목포대학교가 주관했기에, 지리적으로 전남지사의 참석 명분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전남도지사의 이 행사 참석이 정말로 타당했는지, 행정과 고등교육의 자율성이라는 원칙 아래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총장협의회는 대학정책 자율성과 학문적 독립성을 전제로 한 교육기관 간의 내부 논의체다. 

지난 수년간 전국 다른 지역에서 개최된 유사한 행사에서는 해당 지역 광역단체장이 참석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강원대, 창원대, 전북대 등에서 열린 비슷한 총장협의회나 대학 간담회에서도 도지사나 시장이 나서 축사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영록 지사의 이번 참석은 관례적으로도 이례적이며, 정무적 해석이 불가피한 정황을 남긴다.

더 큰 문제는, 지방행정과 대학운영이라는 서로 다른 성격의 공적 기능을 혼동하고 있다는 인식의 부재다. 

김 지사는 축사에서 해상풍력, 우주항공, 이차전지, 애니메이션 등 도정 핵심 과제를 나열하며 대학과의 동반추진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안건들은 대부분 도 차원의 산업정책이지, 대학이 우선적으로 논의해야 할 고등교육의 본질적 과제는 아니다. 

현장의 총장들이 이날 주요 안건으로 다룬 것은 '국가장학금 Ⅱ유형의 불용액 최소화'처럼 대학 재정 운용의 내밀한 문제였다. 

도지사의 발언은 행사 취지와도 맞지 않고, 사실상 대학의 공간을 빌려 자신의 정책 홍보장을 만든 셈이다.

전남도가 지방대학을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재정적·제도적 수단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김 지사는 축사에서 "국가적 지원을 건의하고 있다"고 했다. 

'건의'는 의무가 아닌 표현이며, 책임성 있는 역할과는 거리가 있다.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 지방대학이 필요하다는 당위론만 반복했을 뿐, 구체적 정책 지원이나 지역대학 육성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방식의 과도한 참여는 자칫 대학 자율성 침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정치인의 잦은 교육계 행사 참여는 '정치-교육 분리 원칙'을 흔들 수 있고, 고등교육의 독립적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 일부 총장과 교육계 인사들 사이에선, "언론 노출이나 선의의 이미지 관리 이상의 실익이 무엇이냐"는 회의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정치인이 '교육을 위한다'는 말만 반복하지 말고, 그 말이 실제로 교육 정책의 주체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 

교육은 행정의 하위개념이 아니다. 대학은 정무적 쇼케이스의 배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영록 지사에게 묻는다. 지방소멸 위기를 말하면서 왜 교육의 독립성은 고려하지 않았는가. 

교육 생태계와 도정이 협력할 수는 있어도, 도정이 교육 생태계에 중심처럼 끼어드는 건 분명한 월권이다. 

전남도의 진정한 '동반성장'이란 이름으로 지역대학과 나누어야 할 것은, 마이크가 아니라 구조적 지원과 실질적 정책이다.

※ 국가중심 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 회원교(19개교) : 강릉원주대/경국대/공주대/군산대/금오공과대/목포대/목포해양대/부경대/순천대/창원대/한국교통대/한국해양대/한밭대/서울과학기술대/서울시립대/한경국립대/한국교원대/한국방송통신대/한국체육대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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