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챗GPT'가 인기를 끌자, 이를 가장 먼저 자신들의 플랫폼에 도입한 그룹 중 하나는 여행 업계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여행 에이전시(online travel agency) 중 하나인 익스피디아는 그해 3월 '호텔스닷컴' 모바일 앱에 챗GPT 기능을 통합했습니다. 부킹 홀딩스도 '부킹닷컴'이나 '카약닷컴' 등을 통해 챗봇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호텔과 항공편 예약 등은 검색 업체들이 챗봇 기능을 시연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서비스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 구글은 새로운 AI 여행 기능을 도입, 항공편을 구글로 예약할 경우 티켓 가격이 내려가면 차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익스피디아는 이처럼 경쟁자로 볼 수 있는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빙' 등이 AI로 서비스를 강화하는 데 맞불을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재, 익스피디아와 같은 OTA는 물론, 다양한 가격 비교 사이트들이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됐다는 소식입니다. 바로 AI 에이전트의 등장 때문입니다.
사실 익스피디아와 같은 곳이 이전에 챗봇 기능을 도입한 것은 사용자들이 다른 사이트나 챗봇에서 정보를 찾지 말고, 자신들의 앱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라는 '보조 도구' 역할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이전트는 다릅니다.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호텔이나 항공편을 검색하고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이트로 직접 접근, 결제까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익스피디아처럼 가격 비교를 통해 호텔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OTA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는 1조60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여행 시장에서 예약 결제 시 15~20%의 수수료를 받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OTA로서는 치명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8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익스피디아나 부킹 홀딩스 등은 이에 대비해 오픈AI와 같은 AI 기업과 파트너십 체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글렌 포겔 부킹 홀딩스 CEO는 "우리는 오픈AI나 구글, 메타가 하는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투자해야 한다"라며 "대신 그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 본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챗봇 업체들과의 제휴로 호텔이나 항공편에 대한 질의가 들어오면 AI 에이전트를 자신들의 사이트로 유도해서 결제하도록 만들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OTA 업체들은 이전부터 여행 업계로부터 "기생적인 존재"라는 비난을 받아 왔습니다.
맥스 니더호퍼 하트코어 캐피털 파트너는 "호텔이 OTA에 수수료를 내지 않으면, 그 20% 정도를 고객에게 더 나은 객실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럽 호텔 산업 단체인 호트렉(Hotrec)은 AI 에이전트가 온라인 여행사 의존도를 줄이는 데 확실한 잠재력을 보여주며, "기존 OTA들은 불투명한 순위 모델을 사용해 운영되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수수료로 얼마나 떼어가는지조차 인식 못하고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AI 에이전트 확대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곳은 OTA 업계뿐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이런 사이트들로 인해 호황을 누렸던 주요 호텔들도 덩달아 비상이라는 것입니다. 익스피디아와 부킹닷컴에서 항상 상위권으로 소개되는 글로벌 호텔 체인의 고위 임원은 최근 몇달 동안 AI 에이전트 도입이 가져올 악영향에 대비, 고객 유치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AI 에이전트로 인해 예약 패턴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인식은 이미 익스피디아 등의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에릭 셰리던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AI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여행 산업은 손해를 볼 것이라는 것이 투자자들의 자연스러운 생각"이라며, 기술에 대한 우려와 미국 소비자 수요 둔화가 온라인 여행사 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는 AI를 적극 도입했지만, 다른 기술주처럼 천문학적인 성과를 기록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에어비앤비 주가는 올해 6% 하락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데이터가 핵심 자산이며, 하루아침에 OTA가 사라질 일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요헨 쾨디그 익스피디아 최고 마케팅책임자는 "우리는 여행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여주는 데이터가 풍부하다"라며 "무엇이 잘 팔리고 무엇이 잘 팔리지 않는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큰 가치다. 온라인 여행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포겔 CEO가 말했듯 자체 도구를 만드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챗GPT와 같은 챗봇이 플랫폼을 장악한 상태에서 실효성이 없습니다. 제휴를 통해 자신들이 사이트에서 에이전트가 결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는 오픈AI와 같은 에이전트 기업에 수수료를 나눠줘야 할 가능성이 있으며, 소비자가 중개 사이트에서 결재하는 것을 선호할 이유도 없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여행 업계의 일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OTA와 비슷한 역할로 큰돈을 번 곳은 많습니다. 포털의 쇼핑 섹션이나 배달 전문 업체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에이전트가 개별 쇼핑몰이나 음식점과 직접 연결된다면, 비즈니스 양상이 어떻게 변할 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오픈마켓, 배달 앱, 숙박 앱, 승차중개앱, 가격비교 사이트, 부동산·중고차 정보제공 서비스 등 '온라인 중개'에 해당하는 영역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에이전트가 활성화되면 실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또 아직 오픈AI의 '오퍼레이터'나 앤트로픽의 '컴퓨터 유즈' 등은 결제까지 처리하기에는 성능이 크게 떨어집니다.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어쩌면 인터넷의 등장보다 비즈니스에 더 큰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구매 결정 과정에 인간이 개입할 필요가 없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용자에게 익숙했던 검색이나 결제 과정 패턴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라인 여행사들도 에이전트 AI가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겔 CEO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실상 이를 막을 해자 같은 건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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