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예방부터 회복까지' 정신건강 정책 이정표 될까
시민 마음건강 환경 조성, 선도적 시도인가 피상적 대응인가
전남 광양시가 '정신질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예방부터 회복까지 시민의 마음건강을 체계적으로 돌보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치유의 공감'이 사회적 거리감 속에 머무르고 있다면, 이 모든 대책은 탁상행정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광양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민 누구나 마음건강의 돌봄을 누릴 수 있도록 예방, 조기 발견, 치료, 회복을 잇는 통합지원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주 1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을 열고, 지역 유치원 및 어린이집 아동 대상의 스마트폰 과의존 예방 인형극을 통해 정서적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또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통해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시민에게 무료 심리상담 바우처를 제공, 337명이 실제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접근성이 낮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보다 현실적으로 풀어낸 긍정적인 시도로 평가된다.
지역 내 병·의원 27곳, 약국 23곳이 참여하는 조기 정신질환 발견 사업은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한다.
우울증, 자살위험군 등을 의료인이 먼저 감지해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하고, 센터는 위기상담과 치료 안내를 맡는다.
이러한 시스템은 일상 속에서 '마음의 징후'를 먼저 발견하고 대응하는 데 효과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
회복을 위한 재활과 가족 돌봄…그러나 진정성은?
센터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 중이다. 정서 훈련, 여가 활동, 문화체험 등은 사회 복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필수적이다.
특히 가족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과 교육은 돌봄자의 소진을 예방하는 중요한 지원책이다.
하지만 일부 정신질환자나 보호자들은 "정작 응급상황에는 즉각적 대응이 어렵고, 상담도 서면 안내 수준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는 현장성과 실질성 부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광양시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교육과 '생명지킴이'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자살위험군을 조기 발견하고 연계하는 시민 활동가를 양성해,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이는 자살 고위험 시기인 봄철(3~5월)을 고려할 때 더욱 절실한 정책이다.
그러나 자살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교육뿐 아니라 위기 대응이 가능한 지역 내 상담 인프라 확대, 학교와 복지시설의 실질적 협력체계 등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적 낙인과 거리감, 치유의 방해 요인
문제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거리감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상담은 받아도, 약을 처방받거나 병원을 다닌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학업, 취업, 경쟁 스트레스로 무너진 젊은 세대일수록 심리적 방어기제가 강하게 작동하며, 치료보다는 회피를 선택하게 된다.
이 같은 인식의 벽은 정책보다 더 높은 장벽이다. 광양시의 정책이 진정한 돌봄으로 작동하려면, 이 벽을 낮추는 '공감의 캠페인'과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이 병행되어야 한다.
해외 사례에서 배우는 치유 공동체 모델
정신건강 선진국인 핀란드는 'Open Dialogue(열린 대화)'라는 치유 모델로 유명하다. 환자와 가족, 전문가가 함께 원탁에 앉아, 병이 아닌 '이야기'를 중심으로 치유를 진행한다.
이 방식은 의학적 처방보다 공감과 대화를 통해 회복을 도우며, 재입원율을 현저히 낮췄다.
또한 영국의 'Time to Change' 캠페인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 해소를 위해 시민이 직접 나서 경험을 공유하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성화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에 기여한 대표 사례다.
서울시 성동구는 '찾아가는 정신건강버스'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의 어르신, 노숙인 등을 직접 찾아가 진단과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부산시는 '자살 예방 상담 전담팀'을 별도로 운영하여 고위험군을 즉시 발굴하고 병원과 연계하는 즉응 체계를 갖췄다.
광주광역시 북구는 청년 전용 심리상담소 '마인드링크'를 개소해, 대학생과 취업준비생의 고립감 해소에 집중하고 있다.
이 사업들이 ▲실제 정신질환자에게 접근 가능한가? ▲위기 시 즉각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병원, 약국, 가족, 사회가 함께 치유의 한 축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돌아봐야 할 질문들에 ‘예’라고 말할 수 있어야 정책은 의미를 가진다.
광양시는 선도적으로 정신건강과 자살 예방 사업을 체계적으로 실행 중이지만, 이제는 진정한 공감과 실행력이 더해져야 할 때다. 치유는 단지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함께 아파해주는 사회'만이 그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정신질환자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가 단지 구호가 아니라, 일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광양시의 시도는 그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추가 옷을 완성하려면, 사회 모두의 마음이 함께 꿰어져야 한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