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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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 판매에 제동을 건 것이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을 미국 기술에 중독시키겠다"라고 한 것이 중국 고위 당국자들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21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 중국이 하워드 루트닉 미 상무부 장관의 발언 직후 국내 기업들에게 H20 구매를 자제하도록 압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루트닉 장관은 지난 7월15일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에 최고 성능 칩도, 두 번째, 세 번째 수준 칩도 팔지 않는다”라며 “중국 개발자들이 미국 기술 스택에 중독될 정도로 중국에 제품을 판매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 내 엔비디아 칩 판매를 완전히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었다. 그러나 이 발언은 중국 인터넷감독기구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공업정보화부(MIIT) 등 주요 규제 당국의 심기를 거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발언 공개 직후, 엔비디아는 베이징의 호출로 H20 칩에 백도어가 있느냐는 추궁을 받았다. 이 역시 미국 정부 관계자가 칩 추적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이어 중국 정부는 주요 테크 기업들을 불러 모아, H20 신규 주문을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들은 H20 수입을 보류하거나 물량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달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시장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직후, TSMC가 H20 생산라인을 재가동할 정도로 수요가 회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정부 개입으로 분위기가 급변했다는 분석이다.

중국 규제 당국은 최근 수년간 화웨이나 캠브리콘 등 자국 반도체 업체의 칩 사용을 장려해 왔지만, 알리바바·바이트댄스 등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 칩 없이는 AI 경쟁에서 뒤처진다”라고 맞서왔다. 그러나 지난 4월 미국의 첫 H20 수출 금지 이후, 일부 기업들은 자국산 칩을 활용한 추론 작업에서 성능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태도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규제는 부처 간 입장 차이도 드러냈다. CAC와 NDRC가 강경한 태도를 보인 반면, 상무부와 외교부는 젠슨 황의 방중을 외국 기업 친화적 신호로 활용하며 엔비디아에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다.

다만 현재까지 내려진 규제 지침은 모두 비공식적인 ‘창구 지도(window guidance)’ 형식으로, 향후 미·중 무역 협상 결과와 미국 측 조치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H20 외에도 성능이 더 나은 블랙웰 칩의 중국 전용 버전 수출을 허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과학·기술, 경제·무역 문제는 정치화·도구화·무기화돼서는 안 된다”라며 “억압과 봉쇄로는 중국의 발전을 막을 수 없다”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H20은 군사용이나 정부 인프라용 제품이 아니다”라며 “미국 정부가 중국 칩에 의존하지 않듯, 중국 정부도 미국 칩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업적 활용 차원에서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박찬 기자 cpark@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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