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실체 – 여수산단은 왜 흔들리나?
여수국가산업단지는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이자 전남 경제의 주축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탈탄소 흐름, 납사·LPG 등 원자재 가격 불안정, 전력료 인상, 규제 강화 등이 겹치며 기업들의 가동률 저하와 고용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가동률 하락'(2023년 하반기 기준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의 평균 가동률 70% 미만)과 '고용 감소'(일부 하청업체 인원 감축, 신규 고용 중단)에다 '수출 부진'(석유화학 제품 단가 하락으로 인한 수출물량 감소)까지 겹쳤다.
전남도는 무엇을 했나 – 성과인가, 반복인가?
전남도는 2023년 9월 협의체 발족 이후 정부에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요청했고, 다양한 기업 애로 해결과제를 발굴해왔다. 주요 대응안과 실효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여수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신청 - 지정 여부는 4월 심의 후 확정 예정. 제도 개선(요건 완화 등)은 긍정적 변화로 평가되나 '지정' 자체만으로 실질 효과는 제한적이다.
▲납사 관세 면제 건의 - 2024년까지 한시적 면제 연장, 일부 수입 원가 완화 효과 있으나 구조적 개선책은 아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검사 주기 완화 - 시설 우수 사업장에 한정되어 실질적 영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공업용수 확보 예타 통과(광양 IV단계) - 미래 투자 여건 마련엔 긍정적이나, 가시적 성과까지는 시차가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건의 - 실현되지 않았다. 중앙정부 의사결정에 달려있다.
그동안 여수산단의 위기 대응 및 대책과 관련하여 많은 회의를 가졌으나. 실질적으로 눈에 띄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난 건 아직 없는 실정이다.
2023년 말~2024년 상반기 현재까지 산단 내 생산·고용지표가 뚜렷이 개선되었다는 수치는 전무하다.
반복된 회의와 건의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성과는 제한적이고, 대책회의는 '공감과 절차' 수준에 머무르며, 정부로부터 실질적 예산과 정책을 이끌어낸 성과는 미미하다.
산단 활성화 전략이 아닌, '위기관리' 선에서 멈춘 셈이다. 산업구조 전환에 대한 비전은 보이지 않고, 임기응변식 대응에 머물고 있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는 이유다.
실효적인 산단 활성화, "위기 넘어서려면 체질부터 바꿔야"
이에 따라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구조적이고 실효적인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의 임시방편식 대응만으로는 여수산단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며, 중장기적 구조 개선과 산업 체질 전환을 동반한 실효적 전략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산단 내 기업들도 규제와 고비용 구조, 청년 인력 이탈, 설비 노후화 등 복합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핵심 대안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린전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국내외 ESG 경영이 기업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 탄소 중심의 석유화학산업은 구조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여수산단에도 CCS(탄소포집·저장), 친환경 연료전환 설비, 재생에너지 기반 시설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전남도 차원에서 RE100(재생에너지 100%) 시범구역을 유치하고, 공공-민간 합동 설비 투자 인센티브를 제도화할 경우 기업들의 미래 대응역량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노후 설비 개선과 스마트팩토리 고도화다. 여수산단 내 다수 기업들이 설비 노후화에 따른 안전 우려와 생산성 저하 문제를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AI 기반 스마트 센서, 자동화 설비, 설비 예지보전 시스템 등을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전남도는 기업들이 해당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R&D 매칭 지원사업과 국가안전예산 확보 연계를 통한 자금 유입 구조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
셋째, 청년 고용 연계와 산학 협력 강화다. 산단의 중장기 위기 요인 중 하나는 청년층의 유입 부족과 고령화된 인력 구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남도와 지역 대학(순천대, 여수캠퍼스, 한국폴리텍 등)이 협력해 채용약정형 직무 교육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특히 청년층이 실질적으로 정규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맞춤형 훈련+채용 보장형 프로그램이 정례화된다면, 청년 유입과 지역 정주 여건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
넷째, 중소기업 중심의 세제 및 규제 완화다. 산단의 실질적 활력은 대기업보다는 중소 협력업체들에 달려 있다.
이들을 위해 산업용 전기요금 차등 할인제, 유해물질 검사 주기 완화, 수출입 통관 간소화 제도 도입, 인건비 지원 등 세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역 중소기업 전용 지원 기금 조성과 같은 지자체 주도의 독립 재원 확보는 단순 건의 수준을 넘어 실질적 '생존 도구'가 될 수 있다.
다섯째, 전남도만의 전용 산업지원기금 필요성이다. 중앙정부의 정책 변화에만 의존할 경우, 지역산단의 위기 대응은 속도와 실효성 모두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남도 자체 재원을 활용한 전략산업 위기대응 특별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여수산단을 포함한 주요 산업단지에 선제적으로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기금이 조성된다면 산단 내 기업 혁신, 청년창업, 스마트전환, 환경개선 등 폭넓은 분야에 직접적인 자금 지원이 가능해지며, 정부 예산이 지연될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여수산단의 위기는 구조적인 만큼, 해법 역시 구조적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회의'나 '건의'가 아니라, 제도화된 지원책과 눈에 보이는 변화다. 전남도가 진정 산단을 살리겠다면, 산업의 생태계 전반을 혁신하는 실천적 전략이 절실하다.
'응급처치'가 아닌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전남도는 "정부 의존에서 자율 대응력 확보로 전환"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반복되는 건의 중심의 대책은 '정치적 명분'에 그칠 위험이 있다. 실질적인 도 자체 예산 편성 및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 구조 전환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다. 탄소 중심 산업의 수명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재생에너지·이차전지·수소 중심 산업 재편 전략이 부재하다.
무엇보다 "기존 대기업 중심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체질 개선 유도 필요성"의 절박함이 부족하다. 산단 내 협력사·하청기업 생태계 회복 없이는 지속가능한 활성화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여수 석유화학산업은 전남 경제를 떠받쳐온 뿌리산업이지만, 더는 과거의 방식을 반복할 수 없다. 이제 전남도는 회의와 건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선제적 제도 설계, 자율 대응력 강화, 기술 중심의 체질 전환 전략 없이는 산단의 위기는 구조적 장기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남도는 위기 앞에 '대응'을 넘어 '혁신'으로 답해야 한다.
양준석 기자 kailas21@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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